문득, 친구가 물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때로 가고 싶냐고. 평소대로라면 무슨 소리냐고 웃고 넘겼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손에 박힌 가시처럼 잊힌 듯 잊히지 않은 사건들이 며칠 내내 머리를 맴돌았다. 그 기억 위로 아미르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하산의 슬픈 눈망울이 겹쳐졌다.
영화 [연을 쫓는 아이]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의 아프가니스탄을 배경으로, 아름다웠던 카불의 거리가 포화로 무너진 참혹한 도시로 변해가면서 겪어야 하는 두 소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파슈툰족 아미르와 하자르족 하산은 친구처럼 함께 지내지만 사실 이들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다.
아프가니스탄은 여러 민족이 함께 살고 있는 다민족의 나라이다. 수니파인 파슈툰족은 지배 계급이었고 소수민족 중에서도 시아파인 하자르족은 이단취급을 받으며 오래전부터 하층민으로 살아왔다. 하산은 아미르의 하인인 것이다. 이런 불평등 속에서도 의형제처럼 지내던 둘의 관계는 우연한 사건으로 급격히 뒤틀린다.
연날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아미르를 위해 떨어진 연을 찾으러 달려간 하산이 파슈툰족 아세프를 만나 끔찍한 폭행과 굴욕을 당한 것이다. 아미르는 어두운 골목 어귀에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 돌아서고 만다. 그날의 침묵은 아미르를 내내 괴롭힌다. 어린아이였던 아미르는 하산을 집에서 내쫓는 것으로 자신의 죄의식을 없애려 한다. 그런 아미르의 마음을 아는 듯 하산은 말없이 돌아선다. 하지만 순수히 돌아서는 하산의 눈빛은 아미르의 마음에 또렷이 남는다.
1979년의 전쟁은 이들의 삶을 완전히 갈라 놓는다. 아미르의 가족은 미국으로 망명을 하고 아미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그는 비겁했던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 날, 아미르는 고향 카불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의 가족이 카불을 떠난 후 아미르의 집을 지키던 하산이 탈레반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 아들 소랍은 납치를 당했다는 소식, 그리고 하산이 자신의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충격적인 진실 앞에 아미르는 과거로부터 도피하는 삶이 아닌 그때 하지 못했던 행동을 해야 하는 때가 지금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소랍을 구하기 위해 고향 카불로 향한다.
아미르는 어렵게 소랍을 구하고 함께 미국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소랍은 그동안의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다. 속 시원히 소통할 수 없던 어느 날 소랍은 연을 날린다.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소랍의 마음을 아는 듯 연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그리고 소랍을 위해 떨어진 연을 주우려 달려 나가는 아미르를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는 아미르와 소랍이 화해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산이 ’너를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라고 아미르에게 헌신했듯이 ’소랍을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연을 줍기 위해 달려나가는 아미르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영화의 원작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인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 의 동명 소설 [연을 쫓는 아이] 이다. 2007년에 개봉된 이 영화가 아직도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이것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많은 하산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의 문제는 아프가니스탄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불평등이 자행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의 외면과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외면과 침묵을 비방하기 보다 그날의 선택을 바로잡으려는, 늦은 출발이 주는 울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향 사람들의 처참한 생활에 충격 받은 아미르에게 안내자가 당신은 언제나 관광객이었다고 말했듯이 지배층이었던 아미르가 카불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건 아미르, 한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날의 외면 역시 어렸던 아미르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속죄의 마음으로 그날 그 골목에서의 선택을 바로잡으려 아미르는 소랍을 되찾는 길을 나선다.
이런 그의 모습은 과거의 사소한 침묵이, 무심히 등 돌렸던 외면이 얼마나 큰 무게를 지녔는지를, 과연 나라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상대가 너무 거대해서, 거스르기엔 내가 미약하니까, 등돌리며 합리화했던 나에게 영화는 ’그래서 너는 행복하냐‘ 고 묻고 있다. 그 무거운 질문에 나는 아직도 서성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