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19일, 그날 서울 거리는 ‘부정선거 다시 하자’는 학생들의 구호로 뜨거웠다. 그것은 짓눌린 양심이 터져 나온 절규였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한 세대의 결단이었다. 그날, 두려움은 이상하리만큼 우리를 비켜 갔다. 대신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 있었다. 불의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어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진실이었다.
경무대 정문 200여m 지점에서 우리는 멈춰섰다. 경무대 정문 앞에 무장한 경찰들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경무대 쪽에서 총성이 날아왔다. 젊은이들이 쓰러졌다. 바로 곁에 서 있던 친구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장면을 맨눈으로 보았다. 그날의 피는 거리 위에서 마르지 않았고, 우리의 가슴 속에서도 식지 않았다. 우리는 그 피 위에 서서 자유를 배웠고, 민주주의를 몸으로 이해했다. 그날 이후로 자유는 내게 말이 아니라 삶의 문제였다.
그로부터 긴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나는 머리가 희어지고 걸음이 느려진 노인이 되어 이국 땅에서 조국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세월이 멀어질수록 그날의 기억은 더 또렷해진다. 그리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은 우리가 그토록 염원했던 그 모습인가. 솔직히 말해 마음이 무겁다. 총성은 들리지 않지만 그보다 더 깊은 균열이 이 사회를 가르고 있는 듯하다. 서로를 향한 불신과 증오는 점점 거칠어지고, 공동체를 묶어주던 보이지 않는 끈은 느슨해진 지 오래다. 말은 넘치지만 책임은 가볍고, 권리는 외치면서 의무는 뒤로 밀려난다. 그 사이에서 국가는 점점 추상적인 구호로만 남아가고 있다.
나는 오늘의 위기를 세 가지로 본다. 첫째는 사라지는 미래다.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사회는 조용히 쇠퇴한다. 숫자로 표현되는 출산율의 문제를 넘어 우리는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 자체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둘째는 깊어지는 불신과 분열이다.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갈등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상대를 무너뜨려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다. 마지막으로는 책임의 실종이다. 누구나 비판하지만 정작 스스로 책임지려는 자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나는 절망만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역사는 늘 위기의 순간마다 새로운 길을 열어왔다. 그리고 그 길의 출발점에는 언제나 ‘깨어 있는 시민’이 있었다. 4·19도 그랬다.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상식과 양심이 나라를 움직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다르지 않다.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단단한 삶이다.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법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태도,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책임감. 이 평범한 가치들이 무너질 때, 어떤 제도와 정책도 나라를 지탱할 수 없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고, 도덕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다.
나는 이제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다. 많은 것을 잃었고, 또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단 하나, 이 나라를 향한 마음만은 여전히 또렷하다. 자유는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외치는 것으로 완성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선택되고, 지켜지고, 때로는 감내되어야 하는 것이다. 불편을 감수하고, 진실을 말하며,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는 용기 속에서만 자유는 살아 숨 쉰다. 우리는 망국의 역사를 가진 민족이다.
나는 묻는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있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가 자유를 사랑하는 만큼, 법과 질서를 존중하는 만큼,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책임을 나누는 만큼만 존재한다. 국가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생각과 선택, 우리의 말과 행동이 곧 나라의 운명이다. 자유 대한민국은 아직 살아있다. 다만 우리가 그 가치를 잊을 때 위태로워질 뿐이다.
나는 전쟁을 보았고, 무수한 주검을 보았고, 배고픔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다시 일어서는 ‘한강의 기적’을 보았다. 그렇기에 믿는다. 대한민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양심과 정의의 편에 설 것인가. 분열과 증오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하더라도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 역사는 거창한 순간이 아니라, 이런 작은 선택들이 모여 방향을 바꾼다.
내 목소리는 이제 크지 않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까지 말하고 싶다. 그날 거리에서 우리가 외쳤던 그 한마디를.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나라의 정신은 시대정신과 함께 온다. 영웅적 지도자도, 역사에 남을 무능한 지도자도 혼자서 나라를 흥하게 하거나 망하게 하지는 못한다. 그 인물과 시대정신이 하나가 되어 흥망으로 이어진다. 특정한 인물로 대표되지만, 실상은 모든 구성원의 성취 또는 실패인 것이다. 내가 본 역사는 분명히 말한다. 나라를 지키는 힘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양심이라는 것을.
나는 아흔의 문턱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린다. 이 나라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기를. 자유를 가볍게 여기지 않기를. 서로를 적으로 삼기보다 동지로 ,이웃으로 품기를. 내 목소리는 이제 크지 않다. 그러나 진심은 아직 뜨겁다. 이 늙은이의 외침이 바람 속으로 흩어질지라도,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불씨 하나로 남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는 오늘도 이 나라를 사랑한다. 주여, 이 나라를 지켜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