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수’ ‘후’ 같은 한국 화장품이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던 2015년. 국내 화장품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던 A씨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중국 화장품 업체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이직을 권한 것. 당시 받고 있던 연봉 두배에, 상하이 고급 주택 임대료(월 500만~600만원) 지원, 외제차 제공까지….
매력적인 제안에 A씨는 중국행을 택했다. 그 뒤 1년 만에 한국에서 같이 일했던 연구소장, 연구·개발(R&D), 마케팅 팀원까지 동료 20여 명이 한꺼번에 중국으로 왔다. A씨는 “중국은 원하는 업무 구성원을 통째로 영입하는 방식으로 핵심 기술과 노하우를 빠르게 익혔고 그 결과 중국 화장품 수준이 10년 만에 한국과 비슷해졌다”며 “필요한 기술을 다 얻었다고 판단하자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도 해고했다”고 말했다.
10년 전 한국 화장품 인재를 공격적으로 흡수했던 중국 화장품이 K뷰티를 위협하고 있다. 핵심 기술과 처방, 구체적인 마케팅 노하우까지 K뷰티 성공 방정식을 빠르게 흡수한 뒤, 탄탄한 중국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이제 되레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중국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화장품 수출액은 78억2000만 달러(약 11조8000억원)로, 전년 대비 9.2% 증가했다. 수입 브랜드 비중이 컸던 내수 시장에서도 자국 브랜드 비중은 57%에 이른다.
C뷰티 수입액
눈에 띄는 점은 ‘K뷰티의 나라’인 한국에서도 C뷰티(China·중국화장품)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중국 화장품 수입액은 7176만달러(약 1087억원)로, 전년보다 84% 증가했다. 신세계 시코르, 무신사 메가스토어 성수에 중국 화장품 브랜드인 ‘플라워노즈’를 파는 별도 코너가 있을 정도다.
최근까지 중국 화장품 업체에서 근무한 B씨는 “2010년대 한국 화장품 업체에서만 100명 정도를 스카우트했고 로레알, 에스티로더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도 적극적으로 인재를 영입해 선진 기술을 흡수했다”며 “중국의 공격적인 인재 확보 전략이 중국 화장품의 성장 속도를 앞당긴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더 큰 우려는 최근 C뷰티가 한국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에 개발·생산을 맡기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화장품 업체 2만8000곳 중 자체 생산 공장이나 연구시설을 보유한 곳은 10여 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코스맥스나 한국콜마 같은 ODM 업체에 제품 연구부터 개발, 생산까지 맡기는 구조다. 사실상 ODM 업체가 K뷰티를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김경진 기자
이런 상황에서 ODM 업체의 중국 고객(수주) 비중은 커지고 있다. 코스맥스의 2021년 해외 매출은 8291억원, 지난해는 9326억원으로 늘었다. 해외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7%가 넘는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같은 금액으로 발주하면 중국 화장품이나 한국 화장품이나 품질은 비슷하게 된다는 얘기”라며 “이미 K뷰티 기술과 노하우를 습득한 중국이 생산까지 K뷰티와 같은 곳에서 한다면 과연 차별화가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전문가들은 자체 기술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최근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애경산업의 R&D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이들 업체의 매출 대비 R&D 비중은 2~3% 수준이다. 김주덕 서울사이버대 뷰티산업학과 석좌교수는 “K뷰티가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C뷰티와 프리미엄 시장에서 강한 글로벌 브랜드 사이에서 ‘롱런’하려면 믿을 건 결국 기술력”이라며 “정부와 업체 모두가 R&D 투자를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현주‧임선영‧노유림 기자 chj80@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