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보도를 종종 보면 ‘홍역을 치른다’는 표현이 있다.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을 겪다”라는 뜻이다. 그런가하면 조선시대 민간설화에 ‘홍역귀’라는 귀신이 있다. 조선시대에 홍역으로 워낙 사람이 많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일제시대 때만 하더라도 천연두를 ‘큰손님’, 홍역을 ‘작은 손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전염병이 심각했다.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홍역에는 백신 예방접종도 치료법도 없어서 걸리면 그저 무사히 낫기를 바라는 방법밖에 없었다. 오늘날 홍역이 사라진 것은 1960년 개발된 백신 덕분이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홍역, 볼거리, 풍진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고, 그 덕분에 몹쓸 전염병은 퇴치됐다.
그러나 퇴치된 줄 알았던 홍역이 2025년 오늘날 미국에 다시 나타나고 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내 35개주에서 총 1079건의 홍역이 발생했다. 이중 텍사스주에서만 절반 이상인 700건이 발생했으며, 이중 어린이 2명이 사망했다. 사망한 어린이 모두 백신 미접종자였다.
밴더빌트 대학 의대 윌리엄 샤프너 교수(Dr. William Schaffner)는 “백신이 개발되기 전인 1960 년대에만 해도 연간 400~500 명의 아동이 홍역으로 사망했지만 이후 ‘0 명’으로 줄었다”며 “하지만 올해 다시 발병 사례가 나왔다는 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홍역 뿐만이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CDC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새 변이 ‘NB.1.8.1’이 아시아와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 중이다.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하와이, 뉴욕, 오하이오, 로드아일랜드, 버지니아, 워싱턴 등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과거의 질병’인 백일해(Whooping Cough)도 전년도 대비 2 배 가까이 증가해 1 만 1265 건에 달했다.
그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내 백신 접종 거부 현상을 들고 있다. 백신 거부의 역설은 명확하다. 백신이 너무 성공적이었기에 그 질병의 공포를 잊게 되었고, 결국 백신의 필요성마저 의심하게 된 것이다. 윌리엄 샤프너 박사의 말처럼 “젊은 부모 세대는 이 질병들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졌다.” 홍역으로 매년 수백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던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공포가 질병 자체의 위험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텍사스 A&M대학 벤자민 뉴먼 박사(Dr. Benjamin Neuman)의 말대로 “전염병은 국경이 없다.” 미국의 백신 접종률 하락은 결국 전 세계적 위험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각국의 보건 예산 삭감은 이러한 위험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과 한국 역시 코로나19 대응 이후 방역 예산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감염병 위협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백신 불신의 시대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홍역 백신은 2회 접종 시 평생 면역을 제공하며, 코로나 백신 역시 수억 회 이상의 투여를 통해 그 안전성이 검증되었다. 백신의 부작용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그 위험은 질병 자체의 위험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한인 노인들은 아직도 몇십년전 ‘홍역, 호환 마마’를 기억한다. 몇십년전 전염병들의 귀환은 우리에게 겸손함을 가르친다. 인류는 백신이라는 과학적 성취를 통해 수많은 전염병을 통제해왔다. 그러나 이 성취는 집단적 신뢰와 참여가 있을 때만 유지된다. 백신 접종은 단순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다. 한 아이의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과학을 믿고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