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나 ‘가상화폐’는 이제 우리 한인사회에도 낯설지 않다. 앱 또는 트레이딩 프로그램으로 암호화폐(Cryptocurrency)에 투자하는 한인들을 종종 볼수 있다. 이처럼 암호화폐는 더 이상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한인을 비롯한 아시아계(24%), 흑인·라틴계(21%)가 백인(14%)보다 더 활발하게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도 암호화폐를 출시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주주로 있는 트럼프 미디어 앤드테크놀로지 그룹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직접 보유하는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한다고 16 일 발표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관심이 다시 급증하고 있다.
암호화폐는 ‘혁신’과 ‘자율성’이라는 ‘금융 민주화’를 내세우고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93억 달러의 사기 피해라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암호화폐는 대중화에도 불구하고 투기적 성격이 여전히 짙다. “미국 내에서 암호화폐를 실제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1% 미만”이라는 베터마켓(Better Markets)의 캔트렐 듀마스(Cantrell Dumas )디렉터의 지적은 암호화폐가 여전히 실용적 가치보다는 투기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는 ‘금융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취약계층을 유혹하고 있다. 암호화폐에 몰리는 사람은 부유층이 아닌 소수민족이다. 백인 가구의 중간 순자산이 흑인 가구의 약 6배, 라틴계 가구의 약 5배에 달하는 현실에서, 고위험 자산에 대한 소수계의 높은 투자율은 자산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위험한 신호다. 이는 단순한 투자 선호도의 차이가 아니라, 금융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이 대안을 찾아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구조적 문제의 반영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비트코인 ATM의 전략적 배치다. 이 기계들은 저소득층이 밀집한 흑인 및 라틴계 지역에 집중 설치되어 있으며, 현금으로만 구매가 가능하고 인출 기능은 거의 없다고 듀마스 디렉터는 지적한다. 여기에 20%가 넘는 거래 수수료는 이미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의 자산을 더욱 갉아먹는다. 100달러를 입금해도 실질 가치는 78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현실은, 이것이 금융 포용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약탈적 금융 행위임을 보여준다.
규제가 덜한 암호화폐는 사기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가장 큰 피해자는 60세 이상 시니어들과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이민자 커뮤니티다. 이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피싱, 투자 사기, 사칭 사기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FBI가 지난해 접수한 암호화폐 사기 신고는 15만 건, 피해 금액은 93억 달러에 달한다고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엘리자베스 궉(Elizabeth Kwok) 변호사는 지적한다. 전년 대비 66% 증가한 이 수치는 규제의 공백이 만들어낸 ‘디지털 무법지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연방하원은 최근 ‘디지털 자산 시장 구조법’을 통과시켰지만, 상원에서의 최종 통과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 규제의 공백은 사기와 투기성 투자의 온상이 되고 있다.
암호화폐가 약속하는 금융 민주화의 비전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장 구조는 오히려 기존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불균형한 위험을 전가하고 있다. 진정한 금융 혁신은 기술적 가능성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포용성을 함께 고려할 때 실현될 수 있다. 이민자들은 현재 암호화폐 열풍에 섣불리 빠져들기보다, 스스로 연구하고 파악한 다음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