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백인우월주의가 주변부를 벗어나 주류 정치로 진입했다는 소식이다. 더 이상 변방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현상은 단순하다. 극단주의 담론이 일상화되고, 기독교 민족주의와 정치적 동원이 결합하면서 정책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 수천 명 규모였던 극우운동이 현재는 수백만 명의 온라인 네트워크로 성장했고, 전국적으로 약 1000명의 주의원이 극우 단체와 연계되어 있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주목할 점은 기독교 민족주의의 역할이다. 기독교 정체성과 미국의 국가 정체성을 동일시하는 움직임이 백인 기독교 중심의 국가 질서 회복이라는 명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신이 선택한 지도자’로 묘사하며 새로운 정치 동원 체계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 심각한 것은 음모론의 정책화다. ‘대체이론’ 같은 담론이 주류 정치에 스며들어 실제 법안으로 통과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코로나19, 반백신, 반 LGBTQ 운동이 하나의 극우 네트워크로 결합하면서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극단이 주류가 되는 과정은 단순히 목소리가 커진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무게중심이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사회적 합의에서 배제되던 주장들이 이제는 정당한 정치적 선택지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변화가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를 흔든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다원성과 관용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배타적 민족주의와 백인우월주의가 주류 담론이 되면,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
한국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극단적 주장이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가 정치적 동원 수단으로 활용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젠더 갈등, 세대 갈등, 지역 갈등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면서 사회 통합을 해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극단이 주류가 되는 현상의 뿌리에는 기존 정치 체계에 대한 불신과 소외감이 자리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양극화,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극단적 해법에 대한 매력을 높인다. 복잡한 현실에 단순하고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극단주의가 호응을 얻는 이유다.
하지만 극단이 주류가 되는 순간,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의 길로 접어든다.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해지고,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하는 제로섬 게임이 시작된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공존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폭넓은 사회적 연대 형성이 필수”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극단주의에 맞서는 것은 단순히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적극적 행동이다. 허위정보와 극단주의 담론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도 시민의 책무다.
극단이 주류가 되는 현상은 결국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분열과 혐오의 정치에 동조할 것인가, 아니면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를 지킬 것인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