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은 한 사람의 일생에 소중하고 특별한 성인식인데 이것을 3번째 치르는 지인 부부가 있다. 검은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변한 여인은 사실 봄부터 이 결혼식 준비로 무척 바빴다. 여름에 그들의 청첩장을 받고 나는 그들은 결혼예식을 몇 번 치루어야 사랑을 확인하는 건가? 아니면 아직 함께 살고 있음을, 살아있음을 증언하고 싶은 것일까? 몰랐다.
처음 몽고메리로 왔던 1993년, 우리 가족은 한인들이 별로 없던 이곳에서 활동하던 동양인 이민자들과 만났다. 어른들 나이나 초등학생들인 아이들의 나이가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만나 서로 의지하고 친목을 다졌다. 더구나 남자들이 주말마다 함께 테니스를 즐기면서 만날 기회가 더 많았다. 나와 남편만 군인이었고 다른 부부들은 주로 의료분야나 컴퓨터 계통에 종사했다. 그들은 솔직히 우리가 자동차를 사는 것보다 더 자주 집을 사서 세를 주는 집 부자들이었다. 그런 상황은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성장한 아이들은 어른들을 할머니 할아버지로 바꾸어 놓았다.
지난주, 그렇게 함께 나이든 부부가 결혼 50주년을 기념해서 다시 결혼식을 올리는 성당에서 환하게 웃는 젊은 남녀의 사진이 프린트된 결혼식 프로그램을 보며 나는 혼란스러웠다. 원근에서 찾아온 수 십 명의 가족 친지들이 들러리로 나이든 신랑신부를 앞서서 성전으로 들어왔다. 이어서 아들 딸과 사춘기 손자들 뒤로 수줍은 신랑신부는 웨딩마치에 천천히 성전 앞으로 다가가 혼인서약을 했다. 결혼식을 집전한 신부님은 의례적인 팔팔한 청춘 남녀에게 이상과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라는 당부가 아니고 벌써 그 꿈을 이루고 산 두 사람이 이제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셨다. 편안한 노후를 위한 축복이었다. 내 속에서 키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옆에 앉은 남편에게 “우리도 다시 결혼식 올릴까?” 물었더니 “미쳤냐?” 답했다. 우리는 기운이 빠졌지 미치진 않았다.
50년 전에 그들의 첫 결혼식에 참석했던 친지들은 동시에 자신들의 과거 50년의 삶을 회상하며 그동안 잘 살아 왔음을 흐뭇해 했다. 앞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보여준 단단한 가족애는 결혼미사 내내 내 마음에 따스함을 줬다. 피로연은 5시간 이상의 흥겨운 파티였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테이블과 장식, 밴드와 무용단이 중간중간 흥을 돋우었고 축배를 나눈 후에 모든 사람들이 작은 금빛 종을 흔들자 짤랑짤랑한 리듬이 요란한 축하의 함성으로 크게 울렸다. 테이블마다 돌던 신랑신부와 나눈 인사 역시 그들 결혼의 축하만이 아니라 살면서 맺은 인연과 우정의 결속이었다. 이 부부는 나와 나이가 같다. 태어난 나라가 다르고 성장한 환경도 다르고 성향조차 비슷하지 않지만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니 오랜 세월 사이좋게 잘 지낸다.
젊은 참석자들이 신랑신부를 둘러싸고 라인 댄스를 추는 동안 나와 남편은 몇 지인들과 멀찍이 테이블에 앉아서 어깨를 들썩였다. 나의 맞은편에 지팡이를 사용해야 하는 부부가 그들 의자 사이에 나란히 걸쳐둔 두 지팡이가 내 눈에서 춤을 췄다. 당당하게 뛰어다녔던 의사와 간호사 부부,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이 현재 거동이 불편한 그들 앞을 슬쩍 지나갔다. 용감하게 다시 결혼식을 치르는 부부와 달리 테이블에 둘러앉은 지인들은 아무도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한다. 모두 경제적인 안정을 가져서 비용은 문제가 없지만 솔직히 결혼식을 주선하고 행동에 옮길 열정은 부족했다.
몇 년 전, 예쁜 조카가 웨딩드레스를 입는 결혼예식을 생략하고 남자친구와 함께 살면서 법원에서 서류로 부부가 된 것이 안타까웠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세번이나 거창한 예식을 치르면서 “I do”를 선언하는 사람들을 보니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했다. 결혼식 선물로 받은 금빛 주머니 속에서 열쇠가 나왔다. 우아한 디자인의 신비한 물건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이 세월에 물들어서 높은 가을 하늘아래 단풍의 황금빛이 되었는데 이 금빛 열쇠가 함께 걸렸다. 이것으로 어떤 문을 열수 있을까 생각하니 신부님 말씀이 떠올랐다. 어쩌면 하늘 문을 여는 열쇠일지도 모르겠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황금 열쇠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나의 결혼식을 회상했다. 살며 사랑하고 또 미워하며 긴 세월 함께 과거를 만든 남편과 나의 “I do”는 어떤 서약을 지켰는지 또한 앞으로 지켜야 하는지 두려움을 떨쳐내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