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엄마의 87세 생일날이었다. 큰딸이 사온 보라색 스웨터를 곱고 예쁘다 하시며 입으셨다. 마음에 드셨는지 이렇게 고운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면서 사진을 찍어 보라 하셨다고 한다. 오빠와 언니는 괜한 마음에 농담이시려니 했지만 엄마는 좋은 모습이 담긴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서 한번 찍어 보라 하시는 바람에 갑자기 집에서 사진을 찍게 되었고 미국에 사는 동생들 보라고 사진을 올려 주었다.
사진 속 엄마는 흰머리 곱게 빗어 가지런히 하셨는데 얼굴엔 감출 수 없는 검버섯이 살아온 세월을 말해 주듯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럼에도 살짝 미소를 짓고 계셨다. 언제부터인지 영정사진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사진관에서 경직된 모습으로 반듯하게 찍어 놓았던 것이 요즘은 일상에서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밝은 표정의 사진을 장례식 영정 사진으로 올리는데 어색하지 않고 부드러워 보기 좋다.
9년 전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살아 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 하셨던 엄마는 씩씩하게 견뎌 주셨고 하루하루 혼자 사는 일상을 만들어 가고 계신다. 3년 전부터 매일 주간 보호센터에 다니시는 것으로 재미를 찾으셨고 건강도 잘 챙기시며 살아가고 계신다. 멀리 나와 사는 나에게는 언제나 밝은 목소리로 엄마는 잘살고 있으니 너희 가족 미국에서 외롭지 않고 아프지 않게 잘 살라는 말씀만 하시니 여전히 철없는 나는 그저 내 가족 챙기며 살기 바쁘다고 엄마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벌써 엄마의 나이가 87세이고 영정사진을 찍어 놨다는 말에 사실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도 무심한 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려서부터도 셋째 딸인 나는 집안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빠와 언니들이 있어서도 그랬지만 타고난 성격도 그렇게 가족들을 챙기고 살피기보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나 하고 싶은 일들에 마음을 쏟으며 가족의 일원으로 책임이나 보살핌에는 소홀했다. 자식을 낳고 키워 보니 이제서야 보이는 부모의 수고와 고된 삶에 자식으로서 힘이 되어 드리지 못했던 것들에 더욱 미안하고 부끄럽다.
엄마는 아들 하나에 딸을 넷 낳으셨다. 아들 하나 더 바라며 낳으신 것이 줄줄이 딸만 낳았다고 외할머니 살아 계셨을 적에 많이 듣던 말이다. 그렇게 엄마는 오 남매를 키워 내느라 한세월을 다 보내셨다. 환갑이 넘은 아들과 딸이 되었는데도 엄마는 아직도 자식 걱정을 하신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려도 자식은 그렇게 죽는 날까지 마음 쓰이고 걱정되는 존재인 모양이다.
혼자 남은 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 몰라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저 자식들 오기만 기다리고 그마저 자주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에게 서운함만 갖고 지낸다면 얼마나 힘들고 불편한 나날일지 생각하면 같이 우울해지는 마음이 크다.
“왜 이리 오래 사는지 모르겠다. 아쉬울 때 떠나야 하는데” 자식들에게 혹여라도 짐이 될까 염려하는 마음은 이런 말들로 대신하며 살아있음에 감사보다 괜한 미안함을 자꾸 이야기하신다. 영정 사진도 찍어 놓았고 마음도 세상살이와 정리해 놓은 사람처럼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은 얼마나 주어질지 그 또한 알 수 없는 초조함이 노인을 괴롭게 하는 것 같아 슬프다. 이렇게 이별을 준비하는 우리는 이미 아픔의 시간을 연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87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녀들과 손주들, 증손녀들은 함께 어울려 즐겁게 지내셨다. 노년의 할머니와 중년의 자식들 그리고 청춘의 젊은 손주들과 귀한 새 생명인 갓난아기 증손주는 세대를 이어가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다.
그날 우리는 두 개의 사진을 함께 즐겼다. 백 일을 맞은 증손주의 사진과 남은 시간을 잘 보내고 기쁘게 안녕을 고할 준비를 하는 엄마의 영정사진.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던 사진들이다. 생명의 시작과 끝을 함께 보는 것 같아 고요하면서도 희망찬 삶을 생각해본 엄마의 특별한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