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트럭 한 대가 보일 뿐 자회전 차선은 비어 있었다. 나는 깜박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에 있던 트럭이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를 울리며 쏜살같이 내 오른쪽으로 붙었다. 그리고는 창문 밖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리며 욕을 내뱉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신호등이 바뀌어 내가 좌회전을 할 때 그 트럭은 직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전히 나를 노려보며 담배 연기와 함께 욕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직진할 차였기 때문에 내가 자기 앞으로 차선을 바꾸어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그는 좌회전 차선에서 직진 차선으로 차선을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상황이 손가락욕에 욕설까지 내뱉을 정도로 화가 날 정도였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만일 그 험한 기세에 내가 맞대응이라도 했더라면 일은 더 커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가 있다. 아는 분이 차선을 급히 끼어드는 낯선 차에게 깜짝 놀라 경적을 울렸다. 그러자 그 차에 타고 있던 젊은이들이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면서 차를 세우라고 위협했다. 칠십을 바라보는 노신사인 이 분은 모르는 척하고 그대로 가던 길을 갔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멈추지 않고 경적을 울리며 옆으로, 뒤로 바짝 붙어 따라왔다. 당황한 이 분은 두려움 속에 한참을 달리다가 마침 보이는 큰 병원 주차장으로 차를 급히 돌렸다.
병원에는 앰뷸런스도 있고 시큐리티도 있으니 그나마 안전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주차장까지 따라온 젊은이들은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뒤쫒아오는 것을 멈추고 쌩 하니 병원을 빠져나갔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등에서 식은 땀이 난다고 했다. 혹시 그들이 자신을 향해 총구라도 겨눌까봐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 트럭 운전자의 얼굴보다도 그의 분노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요즘 사회에는 유난히 화가 많아 보인다. 사소한 일에도 분노가 먼저 튀어나오고, 참지 못한 감정은 곧바로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으로 이어진다.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 도로 위는 그 분노가 가장 쉽게 표출되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서로 모르는 타인이기에 더 거칠어지고, 자동차라는 껍질 안에 숨어 있다는 이유로 감정의 브레이크를 놓아버리는 것이다.
미국은 총기를 쉽게 구입해 소지할 수 있는 나라다. 그래서 여기에서의 분노는 더욱 극단적일 수 있다. 한 순간의 욱 하는 감정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닿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분노가 일상이 된 세상이다.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로 분노에 맞서 싸우는 것이 세상을 적극적으로 사는 길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피하고 참기만 하는 나는 너무 못나고 무기력한 사람은 아닐까, 자괴감이 밀려올 때도 있다. 세상이 분노로 들끓고, 참는 마음이 손해처럼 느껴지는 날도 분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어떤 분노에든 같은 분노로 응답하지 않는 것이, 결국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그것은 도망도 체념도 아니다. 한순간의 감정에 나를 넘겨주지 않겠다는 판단이며, 이성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결정이다. 분노로 나를 증명하는 대신, 나는 그 흐름에서 한 발 물러서는 방향으로 가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