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소설책으로 <밝은 밤>을 읽었다. 그 책을 선택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쇼코의 미소>를 쓴 최은영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쇼코의 미소>는 지난해 읽은 첫 소설로, 희로애락을 다양한 미소로 표현해서 흥미로웠던 책이다. 둘째는 여성 4대에 걸친 이야기라는 책 소개가 마음을 끌었다. 여성으로서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 같았다. 셋째는 책 표지 때문이다. 일몰의 분홍빛으로 물든 바다 풍경이 나의 삶터와 닮았기에 눈길이 머물렀다. 뉴올리언스는 미시시피 강과 호수 등 습기가 많은 곳이라 물방울에 반사된 일몰 풍경이 아름답다. 표지의 그 빛이 눈에 익숙했다.
이야기는 바닷가 작은 도시, 희령에서 시작한다. 소설 속 나, 지연은 작년에 이혼을 했다. 짙은 어둠과 같았던 곳을 뒤로 하고 그는 희령 천문대로 일자리를 찾아간다. 그렇게 지연은 희령의 한 아파트에 살게 되고 거기서 할머니를 만난다. 열 살 때 엄마와 함께 만났던 할머니를 서른두살이 되어 다시 만난다. 지연과 할머니는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서로를 알아본다.
할머니는 지연이가 그의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며, 자연스럽게 지연의 증조할머니의 삶을 들려준다. 증조할아버지는 박해받았던 천주교 신자였고 증조할머니는 백정의 딸이었다. 그 시대에는 부부가 되기 어려웠던 두 사람은 고향을 떠나 개성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가족만큼이나 가까운 이웃인 새비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있다. 증조할머니와 새비 아주머니는 똑같이 딸을 낳는다. 두 여인의 자매애는 그들의 딸들이 노인이 될 때까지 이어진다.
이 두 가족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쪽으로 피난하면서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한다. 증조할머니 가족은 희령에 정착하고, 새비아주머니는 대구에 살면서 관계를 이어간다. 지연은 할머니 기억 속에 담긴 오랜 이야기를 들으며, 멀고 답답하게 느꼈던 할머니와 엄마, 엄마와 자신의 관계를 이해한다. 그 관계에는 시대의 흔적이 깊게 남아있음도 알게 된다. 최은영 작가는 <쇼코의 미소>에서 미소로 인생을 표현했다면, <밝은 밤>에서는 기억이 그것을 담아낸다.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나는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사실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 가족의 역사를 더 듣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이민자로 살면서 가족을 만날 기회가 적다 보니 그 바람이 바람으로 끝나버리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한편, 소설에서 이웃과의 깊은 관계가 인상적이었다. 그런 친한 이웃은 친절과 헌신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다시 알려주었다. 내 생활에서는 이웃이 관계의 거의 다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교회와 지역 한인사회 안에서 만나는 이웃이 소중하다. 하지만 소설 속 증조할머니와 새비아주머니처럼 관계의 밀도가 높은 이웃을 사귀는 것은 꿈만 같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한 이웃을 만났다.
뉴올리언스로 막 이사했을 때였다.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 여러 사람이 서 있었다. 앞집 룻 아주머니 가족이었다. 아주머니는 우리 가족을 환영한다는 인사를 건네며 종이 쪽지를 나에게 건넸다. 룻 가족 구성원의 이름과 애완견 두 마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전화번호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한국에서 주문한 교회 달력이 우리 집으로 배달된 적이 있다. 룻은 그 무거운 것을 다른 사람의 손이 닿지 않도록 현관 가까이 옮겨 놓았다. 우리 가족이 집을 비운 것 같으면 거리에 내놓은 우리 쓰레기통을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집을 나서다 마주치면 꼭 손을 들어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룻에게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우리에게 다가와 뺨을 맞대고 인사를 나눈다. 나의 아들에게는 이름을 불러주며 사랑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룻의 푸근한 다정함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감사하게도 나의 이웃들 중에는 룻처럼 다정한 한인들이 꽤 있다. 내가 아는 그들은 하늘의 빛을 닮아 주위를 환하게 밝힌다. 한국인과 미국인이 어우러져 살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만들고 미국의 밤도 밝힐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