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 배우기 (48)
미국을 대표하는 어린이 책 작가, 케빈 행크스의 그림책 은 한국에서 <내 사랑 뿌뿌>로 제목이 변경되어 출판되었다. ‘뿌뿌’는 이 책의 어린 주인공 ‘오웬’이 애착하는 노랗고 보드라운 담요이다. 원서에서는 ‘퍼지(Fuzzy)’로 불린다. 잔털이 보들보들한 느낌이 나는 ‘퍼지’라는 이름도 좋고, 아이들이 부르면 귀여운 느낌이 드는 ‘뿌뿌’도 좋다.
보통 3세 이하의 걸음마를 하는 시기에 아이들은 애착물건에 집착한다. 젖떼기와 같은 주 양육자와 조금씩 분리되는 과정에서 아이가 느끼는 불안감과 긴장감 같은 불편한 감정이 애착 물건을 통해 완화된다. 애착물건에 대한 집착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서도 볼 수 있는 흔한 행동이다. 애착물건은 아이의 심리적 독립 과정에서 아이의 정체성 형성과 자아 개발을 위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의 정서발달에 도움을 주는 애착물건이다 보니, ‘애착인형’이라는 이름으로 보드랍고 폭신한 감촉이 있는 인형을 판매하기도 한다. 좋은 점이 많은 애착물건이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이별해야 하는데… 이것이 정말 어렵다.
오웬과 뿌뿌는 언제나 함께 있다. 화장실, 식탁, 방안, 바깥 놀이터에서도. 뿌뿌의 몸에는 오렌지주스, 포도주스, 초코우유, 아이스크림, 땅콩버터 같은 얼룩들이 덕지덕지 묻어있지만 오웬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뿌뿌도 좋아한다며 좋아한다. 뿌뿌와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 싶은 오웬, 하지만 곧 학교에 가야만 한다.
오웬의 부모가 오웬과 뿌뿌의 자연스러운 이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저렇게 큰 애가 담요를 질질 끌고 다니다니 걱정도 안 되우?”라며 옆집에 사는 족집게 아줌마의 노하우 전수가 시작된다. 아줌마가 가르쳐 준 첫 번째 방법은 뿌뿌를 머리맡에 두고 자면 요정이 담요 대신 커다란 선물을 주는 것, 두 번째는 담요에 냄새나는 식초를 적셔 두는 것, 하지만 뿌뿌를 지키려는 오웬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세 번째 비법은 무조건 ‘안돼!’라고 하는 것, “안돼!”라는 말을 들은 오웬은 담요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한다. 그치지 않는 오웬의 울음 앞에서 엄마의 현명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뿌뿌를 잘라 여러 장의 작은 손수건으로 만든 것! 이제 오웬은 언제 어디서나 주머니 속 뿌뿌와 함께할 수 있다.
큰 담요에서 작은 손수건으로 모양이 변경되어도 전과 다름없이 뿌뿌일 수 있는지…? 내 아이가 어릴 때, 더러워진 애착인형을 세탁기에 넣고 빨래했다가 기겁하며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혼났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게 현명한 해결책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가 가위로 뿌뿌를 싹둑싹둑 자르고 재봉틀로 드르르 박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오웬이라니…
나에게도 애착 물건이 있었다. 일곱 살쯤, 우연히 길에서 주운 플라스틱 인형이었는데, 내 작은 손바닥만 했다.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혼자 놀 때만 살짝 꺼내서 대화를 나누던 친구였다. 원래 내 것이 아니라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함부로 보여주거나 소개하면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늘 함께 했다. 학교에 가야 할 때쯤,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해진 인형을 종이에 돌돌 싸서 나만이 아는 비밀 장소에 숨겼다. 그리고 한동안 잊었다.
오직 나만의 친구가 나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위로가 되었던 초록이! 초록이는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초록이를 다시 만난 것은 1년쯤 지난 후였다. 나는 “초록아!” 하고 불러 보려 했지만 왠지 쑥스럽고 낯설었다. 초록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다. 애착인형에 대한 애착심이 사라질 만큼 나는 자라버린 것이다. 초록이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좀 허전하고 서글프다. 한때 너무 친했지만 더 이상 대화가 안 되는 친구를 두고 온 듯하다.
노랑 담요가 잘려서 손수건이 되어도 뿌뿌는 여전히 뿌뿌라면, 형태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것은 뿌뿌를 향한 오웬의 사랑일 것이다. 오웬도 언젠가는 뿌뿌와 이별을 하고, 나처럼 조금은 쑥스럽고 조금은 서글프게 옛사랑을 추억할지도 모르겠다. 애착물건은 안정감과 편안함뿐만 아니라, 이별의 서글픔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