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 추위가 지나자 완연한 봄이다. 모든 생명이 탄성을 지르듯 빠르게 세상에 모습을 들어낸다. 특히 온갖 나무들에 빠끔히 돋아나오는 여린 잎들이 제각기 다양한 색조로 신선하다.
운전하면서 양 도로변의 푸름에 취하니 조니 캐쉬가 부른 ‘40 색조의 초록’ 노래가 내 안에서 터져 나와 물오른 나뭇잎들과 어울린다. 1959년, 27세의 조니 캐쉬는 영국으로 공연하러 가던 길에 비행기 창 밖으로 본 초록의 섬, 아일랜드에 반했다. 그는 공연을 마치자 바로 아일랜드를 방문했고 푸름에 푹 취해서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노래가사에 나온 지역들, 샤넌, 딩걸, 콕, 더블린에서 걸었던 나의 추억이 그의 노래를 따라왔다.
지역 지인들과 가진 정기 모임의 모티브가 ‘성 패트릭의 날’ 이었다. 초록의 옷을 입고 참석했다가 한 여인이 정성껏 만든 공예품을 받았다. 아일랜드 전설의 인물, 초자연적 존재인 레프레칸이 골든 코인을 찾아 큰 솥에 머리를 박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옆에 앉은 지인이 들판에서 찾은 네 잎 클로버를 손에 들고 행복한 어린 손녀의 사진을 보여줬다. “우리도 나가서 네 잎 클로버 찾을까?” 했더니 그녀가 깔깔 웃었다. 하지만 나는 창밖의 잔디밭을 보며 클로버 밭을 헤집고 네 잎 클로버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기분 좋은 나들이에서 돌아와 집안에 들어섰다가 크게 한방 먹었다. 2주 전에 본 주치의에게서 온 짧은 메일이 내가 찾아온 네 잎 클로버를 앗아갔다. 6개월전의 혈액검사 결과와 이번의 결과에 생긴 변수가 경찰차의 붉은 경고등보다 더 빠르게 내 머리속에서 돌았다. 내 A1C 숫자가 당뇨전단계 치수에 있었다. 놀라움이 아니라 당혹감이었다. 그러잖아도 얼마전에 미국인들 8명중 1명이 당뇨환자라 한 CDC 발표에 놀랐는데 내가 그 1명의 줄에 서러 가는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가만히 나의 생활습관을 돌아봤다. 평소에 밖의 부엌에 의지하는 식생활 해결은 오래된 습관이라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거였다. 솔직히 지난 연말과 새해에 달콤한 디저트를 많이 먹었다. 딸들이 준 초콜릿과 맛있던 과자들, 남편은 당뇨가 있으니 하고 내가 더 많이 먹었다. 남편이 예전에 즐겼던 음료수들을 골고루 사온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마셨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옛날 생각하며 가끔 먹는 독일산 사탕통이 눈에 띄자 얼른 캐비닛 안으로 치웠다. 매일 당뇨약을 복용하는 남편은 내가 건강을 걱정하면 늘 인상을 썼었다. 그래서 “먹고 싶은 것 맘대로 먹고 행복하고 싶다”는 남편의 뜻대로 나도 편하게 살던 중이었다.
이제 내가 경고장을 받았으니 나도 남편에게 경고장을 줬다. A1C 숫자를 내리기 위해서는 운동과 식습관이 중요한데 내가 운동하는 것은 충분하니 나는 저당식 식단에 집중했다. 앞으로 설탕이 많이 든 디저트나 소다는 금하고 건강식을 먹으려고 그동안 반 닫혀 있던 부엌을 열었다. 인터넷에서 좋은 정보를 찾고 건강한 식단을 차리려고 식품점에 가서 신선한 식재료를 구입해 왔다.
하지만 꿈조차 어수선해서 새벽 4시에 깨어났다. 집안의 어둑한 고요가 나를 감싸 안았다. 불을 켜지 않아도 침실에서 나오면 내 다리는 복도를 정확히 몇 발자국 걸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또 몇 발자국을 걸어서 가족방에 도착하고 그곳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익숙하게 나를 데려갔다. 불을 밝히고 커피를 내렸다. 새벽 1시가 지나서 잠자리에 들었으니 내 몸이 좀 흐느적댔다.
뜨거운 커피잔을 들고 창가에 앉아 브라인드를 열고 어두운 밖의 정경이 서서히 깨어나는 순리, 기적의 순간들을 숨 죽이고 지켜봤다. 그러다 떠오른 햇살이 앞집의 유리창에 붉게 닿자 최면에서 깨어났다. 그 불덩이가 빠르게 흩어지며 밝히는 세상에 새들의 탄성이 채웠다. 그런데 오늘은 내 고요한 만족에 까시 같은 A1C 수치가 앞에 그림자로 서 있었고 내가 올라선 삶의 줄타기에 아슬아슬한 평온과 아슬아슬한 위기감이 함께 있었다.
행운을 비는 아이리쉬 축복을 읊으며 셀러리와 사과에 피넛 버터를 발라 먹었다. 혈당을 조절해서 다음 혈액검사에서 정상수치를 받는 반전을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나에게 찾아오는 도전은 견디고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