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절, 직장에 출근하는 딸을 대신해 손자, 손녀를 돌보게 되었다. 가까이 살며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멋모르고 아이를 키웠던 젊은 시절과는 달리, 삶의 연륜이 쌓인 지금은 조금 더 지혜로운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정성껏 만들어준 한식을 늘 맛있게 먹어 주었다. 불고기, 미역국, 떡볶이, 잡채 등 늘 비슷한 메뉴였지만, 질려 하지 않고 밥 공기를 뚝딱 비워낼 때면 ‘역시 한국인의 피는 속일수가 없구나’ 싶어 미소가 지어졌다.
당시 4살 6살이었던 아이들을 단순히 먹여주고 돌보는 것에만 그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 나이에 맞는 놀이와 교육 방식을 미리 공부하고 계획했다. 직접 플래시 카드를 만들어 한글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은 이를 놀이처럼 즐겁게 받아들이며 금방 한글을 깨우쳤다. 글을 익힌 뒤에는 책 읽는 재미를 알 수 있게 해주려고 고민을 했다. 전래 동화를 읽어주며 한국의 민속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위인전과 역사책을 통해 한국인의 뿌리를 알려주었다.
존경하는 위인을 물으면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라고 답하고, ‘한국의 잔다르크’ 같은 용감한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는 아이들을 볼 때면 가슴이 뭉클해졌다.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의 역사를 들려줄 때면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다. 어느 날은 윷놀이와 공기놀이를 하며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줄넘기를 하거나 요리를 하며 아이들이 몸으로 직접 한국을 익힐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
어느덧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들은 이제 K팝에 푹 빠져 있다. 손녀는 그룹 TXT(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열렬한 팬이 되어 방 벽면을 사진으로 가득 채웠다. 좋아하는 맴버는 각자 다르지만, 어느새 우리 가족 모두가 TXT 팬이 되었다. 학교 친구들도 한국 아이돌에 관심을 보이며 한글을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들의 강력한 퍼포먼스와 뛰어난 가창력에 할머니가 된 나도 마음을 주게 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넓히며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아이돌 그룹의 활약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손녀의 학교 친구들 중에 부모님의 타지 발령으로 한국과 일본으로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접한 친구들과도 소통하며 그 곳의 문화도 전해 듣고 이 곳 소식도 알려주며 다양한 문화를 간접 경험한다.
아이들은 세계를 향해 열린 창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듣는다. 글로벌한 시대 속에서 다양한 것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결국 아이들은 국경을 넘어 자라지만 그들의 뿌리는 마음 속에 자리한다. 세계를 품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요즘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글로벌화 일 것이다. 부모가 의도적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는 스스로 세계를 배운다. 이러한 변화는 빠르고 조용하게 이루어진다. 문화는 낯선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스며든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된다.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운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더 일찍, 더 깊이 찾아온다.
손녀는 기회가 되면 한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아이들의 마음속에는 한국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자라고 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새로운 경험 속에서 얻는 배움은 단순한 학업을 넘어 삶을 통해 자신을 찾는 여정일 것이다. 때로는 흔들리기도 하고 멈춰 서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을 품고 더 깊은 마음으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길 지켜볼 것이다. 양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편견 없이 성장하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다. 그 과정에 나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다.
미국에서 자라며 얻은 넓은 시야와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함께 성장한다면, 아이들이 마주할 세상은 더욱 넓어질 것이라 믿는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자신이 사랑하는 길을 행복하게 걸어가길 할머니는 오늘도 간절히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