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말했다. 그림을 꼽으라면 밀레의 ‘저녁 종’이라고. 일을 멈추고 기도하는 모습이 숭고하고 경이롭다고 했다. 내게도 있다. 가슴에 새겨진 걸작품. 제목은 ‘열 개의 발’이다.
내 어린 시절의 겨울은 얼마나 춥던지 학교에 가면 투박한 쇠로 만들어진 난로가 있었으나 불씨는 하나도 없었다. 손에 입김을 호호 불어도, 의자에 앉아 있어도 덜덜 떨렸다. 집에 와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억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외투는 투박한 검은색 광목이었다. 무겁고 둔한 코트 하나로 겨울을 지나가야 하던 때. 내 손과 발은 동상에 걸려 퉁퉁 부어올랐다. 어떻게 해야 낫는지, 낫을 수 있는 것인지, 심해지면 손도 발도 위험하다는 것도 몰랐다. 다만 부어오른 손과 발을 헝겊으로 둘둘 말아 학교에 오가고 있었다.
밤이 되면 엄마는 대야에 따뜻한 물을 준비해 주셨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옥수숫대 혹은 가지대를 담가 두셨다. 지금 생각하니 동상을 치료하기 위한 민간요법이었다. 매일 밤 한 시간가량 손과 발을 대야에 담그도록 준비해 주셨다. “얼른 나아야 할 텐데.” 간간이 한숨 섞인 말씀을 하셨다. 모두 나를 향한 걱정과 사랑이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참 좋았다.
길고 긴 겨울이었다. 문풍지는 서럽게 울어댔고 한기는 이불 속까지 스며들었다. 아마도 그 추위는 배가 고프니 더 심했을지도 모른다. 찬 기운이 방바닥을 타고 오르던 밤. 불기 없는 아랫목에 누워 우리 오 남매는 잠을 청하곤 했다. 그때 나는 종종 먹는 것을 꿈꿨다. 헨젤과 그레텔이 찾아내었던 과자로 만든 집. 동화책 속 그 집. 벽은 과자로, 지붕은 초콜릿으로, 창문은 사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눈을 감고 그 집 앞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과자 한 조각, 입안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버릴 단맛, 초콜릿을 마음대로 떼어 먹는 꿈을 꾸었다. 또한 매일 가져와도 아직도 주렁주렁 쌀이 달려 있는 나무를 상상했다. 양껏 가져와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이 먹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은 덜 추웠던 것 같다.
어둠이 깊어지면 엄마는 물을 펄펄 끓여 둥그런 물통에 부어 우리의 발치에 놓아주셨다. 시려서 서로 비비던 발 열 개가 물통에 얹혀졌다. 사이좋게 작은 발들은 떼고 붙이며 온기를 나누어 가졌다. 우린 다 어렸고 삶을 몰랐다. 그래서 엄마의 발도 차갑다는 것, 엄마도 배고프다는 것을 몰랐다. “엄마, 배고프지 않아? 춥지 않아? 엄마도 여기 발 좀 대요.”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단 한 번도 엄마의 겨울을, 외로움을, 슬픔을, 고충을 묻지 못했다. 철없는 나는 그저 따뜻한 물통에 발을 얹고 고요히 잠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곤 했다. 엄마는 당연히 그곳에 서 있는 사람, 아무리 불러도 지치지 않고, 아무리 힘들어도 쓰러지지 않는 사람으로 알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엄마가 그려준 그림이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그 그림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붓을 잡거나 물감을 섞어 칠해본 적도 없다. 하얀 캔버스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우리의 배를 채워주는 일밖에 모르던 분이 그려서 내 가슴에 저장해 준 그림. 따뜻한 물통에 대고 잠을 청하던 열 개의 발. 오늘 그 그림에 우표 한 장 붙여 하늘을 바라본다. 울 엄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