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25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차림새, 곧게 뻗은 단발머리의 말라는 노인 케어를 업으로 하는 사업가다. 지금 그녀는 후견인이 가진 권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법원은 그녀의 사업이 속임수라고 주장하는 피후견인 아들의 청원을 기각한다. 패소한 아들이 노모를 볼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 [퍼펙트 케어 : I Care a Lot ] 는 2020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작품으로 로지몬드 파이크가 냉혹한 사기꾼 역을 맡았다. 영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처음과 달리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불법이 아닌, 철저한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범죄를 보며 어찌할 수 없는 망연함과 좌절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정의는 결국 이루어질 것이고, 합법적인 것은 곧 공정한 것이라는 지금까지의 믿음을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으로 계속 흔들어 댔다.
주인공 말라는 법원이 지정한 후견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노인들의 재산과 삶을 통제한다. 그녀는 노인들의 연금과 재산을 가로채고 그들이 죽으면 남은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해 자신의 부를 키운다. 물론 혼자서 하는 것은 아니다. 파렴치한 의사는 돈 많은 독거 노인을 추천하고, 말라는 철저한 뒷조사를 거쳐 그 노인의 후견인이 된다. 그녀는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후견인이란 그저 효율적이고 손쉬운 비지니스일 뿐인 것이다. 어쩌다 가족이 항의하면 오히려 법을 앞세워 그들을 위협한다. 합법이란 이름아래 그녀의 사업을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 미망인의 후견인이 되면서 그녀의 사업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평범하고 순수해 보이는 그 미망인은 마피아 보스의 숨겨진 어머니였다. 영화는 말라와 마피아의 대결이라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자칫, 섬뜩한 전개로 이어질 것 같아 마음을 졸였지만 영화는 우스개 코미디 같은 설정으로 보는 사람의 긴장감을 느슨하게 풀어버린다. 서슬이 퍼렇게 위협적이어야 할 보스의 복수는 어릿광대 놀음처럼 허점 투성이여서 맥이 풀렸고 오히려 말라가 보스를 위협하는 우스꽝스런 장면이 연출된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손을 잡고 말라는 사업을 확장 시켜 글로벌 후견인 센터를 건립한다. 영화는 엔딩을 향해 가고 있는데 말라는 자선 사업가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이대로 끝인가, 하며 속을 끓이고 있을 때 첫 장면에서 보았던 패소한 아들이 다시 등장한다. 말라는 어머니의 임종을 보지 못해 분해하는 아들을 보며 위로는 커녕 오히려 그를 비웃는다. 순간, 한발의 총성이 울린다. 꺼져 가는 말라의 눈빛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허탈한 기분이었다. 이렇게라도 범죄는 처벌받아야지 하면서도 정의가 실현됐다기 보다 개인의 보복이라는 상쾌하지 않은 찝찝함만 맴돌았다.
이런 찝찝함은 해소되지 못한 답답함으로 계속 머리속에 남아 있었다. 그건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한 지금의 현실에서 느끼는 거북함과 닮은 감정이었다. 내 앞에 다가오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의 판단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정치가들은 정당한 논리로 자신을 믿으라 하지만 난해한 전문 용어 속에 숨겨진 의도는 없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말라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총성이 울리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칠 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우리 발 밑을 흔들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합법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지, 안개를 뚫고 다가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까이 오기 전에는 알 수가 없는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법과 질서를 신뢰하려 애쓰고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정된 질서를 유지하고 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안정 속에서도 누군가는 합법의 이름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무관심으로 미처 알아채지 못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불편함이 새로운 원동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때론 영화의 완성도 보다 그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더 많은 의미를 두는 것도 좋은 영화 감상법이란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