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 앉아 있는 강아지. 나는 그를 애완견이라 부른다. 하지만 한 학생은 달랐다. 자신의 강아지를 이렇게 소개한다. ‘최고의 친구, 마음치료사예요’ 라고.
어느 날, 한 가정에 초대를 받아 가게 되었다. 잠시 주인이 자리를 비운사이 할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눈을 껌벅껌벅하시며 소리를 낮추어 이런 말을 하신다. “우리집에 걱정이 있어요.” 뒷마당에 수영장까지 갖추고 살만큼, 여유 있는 이 댁에 걱정이라니? 무슨 일일까? 할머니는 2층을 손으로 가리키며 “저기요, 저기 손녀딸이 있는데요. 학교를 그만 두었어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안 해요. 부모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녜요. 달래고, 훈육하고 비위를 마추어도 보고 방법을 다 동원해도 별 수가 없어요. 사람을 싫어하고. 밖에도 안 나가요. 스트레스로 먹기만 하니 자꾸 살이쪄요. 몸이 불어나니 더욱더 만남을 꺼리지요. 우울증 환자가 되었어요.”
만난 적이 없는 학생이건만 마음이 아프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 간간이 점심을 같이 먹을까? 아님 쇼핑을? 아님 영화라도? 그건 전혀 길이 보이지 않는 생각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강아지를 키워보지 않겠 느냐는 말이었다. 그 순간 그 아이가 떠올랐다. ‘아, 이것이다.! 강아지를 키워보게 하는 거다.’ 갑자기 생각이 번쩍였다. 한 걸음에 달려가 내 품에 강아지를 안았다. 얼마나 예쁜지 하얀 털 사이로 검은 무늬가 번져 있었고 동그란 눈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가슴에 안으니 생명이 지닌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그 온기를 망설임 없이 한 아이에게 건넸다. 우선은 돌려보낸다는 소리가 없음에 감사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 들려온 이야기. 처음에 귀찮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작고 여린 존재는 쉽게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해피라 부르며 돌보아 주기 시작했다. 해피는 매일 같은 음식을 먹어도, 신이 나고 같은 공을 가지고도 다시 즐거웠다. 뿐만 아니라 기다릴 줄 알았다. 먹이나 물, 간식 그 어느 것이라도 줄 떄를 가만히 기다렸다. 방 문 앞이나 계단 밑에서 혹은 조그만 제 집에 들어가 조용히 있었다. 말을 걸어주고 쓰다듬고,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기를 기다렸다. 아이에게 해피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있었다. 얼굴을 비벼대고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목욕을 시켜주고, 머리를 빗어주고,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며 아이의 멈추어 있던 일상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해피가 운동이 필요하니 데리고 산책을 나오기 시작했다. 마른 가지 끝에 연둣빛이 작게 한올한올 하루가 다르게 분명히 보인다. 어제보다 부드러운 바람이 어깨에 가벼운 손을 얹는다. 괜히 한 번 더 숨 쉬어보고 싶은 날이다. 그리고 괜히 괜찮아, 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의 마음에도 그런 날이 찾아오고 있었다. 사람과 인사하고 작은 이야기로 웃음을 나누며 아이는 다시 세상과 이어졌다. 무엇보다 강아지는 가족 의 공동화제를 이끌어 내며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일년이 지나갈 무렵 아이는 다시 책상위에 책을 펼쳤다. 검정고시를 준비한다고 했다.
강아지 에게 무슨 힘이 있는 걸까? 약도 아니고, 어떤 처방도 아닌데. 그저 곁에 머물렀을 뿐인데. 알고 있을까? 그 작은 몸으로 꼬리를 흔들며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의 어둠속에 빛을 켜고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는 다시 웃게 해준 이유가 되었고,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가게 한 손길이 되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도 나는 생각한다. 그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고. “작은 마음 치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