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진한 검은 피부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어린 흑인 소녀의 미래를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흑인 여성의 약 49%, 흑인 남성의 약 51%는 결혼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피부색 때문이라고 하며, 진한 피부색일수록 결혼에 더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심리학자들이 인종차별이 흑인 아동의 자아인식과 자존감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백인 인형과 흑인 인형을 보여주며 ‘예쁜 인형’, ‘못생긴 인형’, ‘착한 인형’, ‘나쁜 인형’을 선택하도록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흑인 아이들 상당수가 백인 인형을 ‘예쁘고 착한’ 인형으로 선택한 반면, 흑인 인형은 ‘못생기고 나쁜’ 인형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결과는 어린 나이부터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흑인 아동들의 자아 인식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흑인 여성들은 임신할 때부터 자기보다 피부가 더 검은 아이를 낳을까 걱정하고 있으며, 그래서 피부색이 옅은 배우자를 선호하고, 부모들은 자녀들의 결혼 상대가 피부가 더 검으면 결혼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흰색은 아름답고 행복을 뜻하기 때문에 결혼식에는 흰옷을 입으며 검은색은 불행을 뜻하기 때문에 장례식에 검은 옷을 입는다고 말하기도 한다.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품 가운데 하나가 피부를 연하게 하는 일종의 크림 제품이며 전 세계적으로 약 430억 달러어치나 팔렸다고 한다. 사실 얼굴은 어느 정도 희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몸의 다른 부분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현재 글로벌 피부 미백 시장은 연 8.5% 성장률을 보이며 2028년에는 12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수요 증가가 두드러진다.흰 피부에 대한 욕구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태국이나 다른 동남아시아에서는 TV광고나 드라마 방영시 피부색이 검은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으며 그로 인한 영향으로, 젊은 여자들이 흰 피부를 소망하기 때문에 피부를 옅게 해주는 약품의 인기가 매우 높다고 한다.
작년 CNN 보고서에 따르면, 피부색 차별은 의료 서비스 영역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피부색이 진한 환자들이 의료진으로부터 차별적 대우를 받거나 증상을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특히 피부과 질환의 경우, 의료진들이 흰 피부 위주로 교육받다 보니 어두운 피부톤에서 나타나는 증상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흑인 여성 환자는 인터뷰에서 “의사가 내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내가 과장하고 있다는 듯이 대한다”라고 말했다.디즈니의 2023년 실사 영화 ‘인어공주’에서 할리 베일리라는 흑인 배우가 주인공 아리엘 역을 맡았을 때 전 세계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일부에서는 “원작을 훼손한다”며 강한 반발을 보였지만, 많은 흑인 어린이들이 자신과 닮은 공주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영상들이 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5년 넷플릭스 드라마들에서는 다양한 피부색의 흑인 배우들이 주요 역할을 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진한 피부색의 흑인 배우들보다는 비교적 밝은 피부톤을 가진 배우들이 주연을 맡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흑인이란 어떤 것을 연상시킬까? 범죄 연관, 시끄러운 랩 음악, 그리고 스포츠 스타 같은 건 아닐까? 그런 단순한 선입관념 때문에 그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우리들이 갖게 됐는지도 모른다.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박사 인권선언 운동 이후 흑인들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고 그 뒤로 많은 어려움과 크고 작은 사건들 뒤에 결국은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역사적인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어느 흑인 여성은 인터뷰에서 “흑인 대통령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진한 피부색을 가진 흑인 여자라는 데서 더 큰 희망을 갖게 합니다”라고 감격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커멀라 해리스는 부통령도 지냈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그녀의 존재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인도계와 자메이카계 혼혈인 그녀의 성공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들이 제기되는 것을 보면, 피부색 차별의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우리 한인들도 그네들의 아픈 마음을 먼저 헤아려 보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쉽게 판단해 온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본다. 일상생활 속에서 단지 피부색이 검다고 자신도 모르게 혹은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말이나 행동을 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은 없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피부색 차별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