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8일 애틀랜타 한인 학부모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질병예방통제센터(CDC)와 에모리 대학이 위치한 디케이터에서 30대 남성이 총기를 난사해 2명이 숨지고 여러명이 부상한 것이다. 에모리 한인대학 학생과 직원들, 주변 한인들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총격범 패트릭 조셉 화이트는 평소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으며, 자신의 병이 백신 접종 때문이라고 원망했다. 그 결과 CDC 건물을 향해 180발의 총알을 난사하는 사고를 저지른 것이다.
CDC, 에모리대 총격 사건은 ‘백신 음모론’이 미국 사회에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코로나 독감 백신을 접종하면 자폐증 등 정신병을 유발한다”는 것이 백신 음모론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런 백신 음모론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백신 음모론’을 믿는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장관은 총격사건 이후 CDC 직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케네디 장관은 항의에 아랑곳 없이 수잔 모나레즈(Susan Monarez) CDC 국장을 임명 한달만에 해임했다. 모나레즈 국장이 백신에 대한 케네디의 지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모나레즈의 변호사들은 “과학적 근거 없는 무모한 지시를 승인하기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그녀의 해임과 함께 3명의 핵심 간부가 연쇄 사임했다.
케네디 장관은 지난 6월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 위원 17명을 전원 해임하고 ‘백신 음모론자’들로 구성된 8명의 새 위원을 임명했다. 이들은 오는 9월 18일 코로나19, B형 간염, 홍역 등 주요 백신에 대한 권고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CDC는 국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케네디 장관이 이 권고안에 직접 서명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를 낳고 있다.
전직 CDC 국장이자 로버트 우드 존슨 재단(Robert Wood Johnson Foundation) 회장인 리처드 베서(Dr. Richard Besser) 박사는 “CDC 국장의 해임으로 CDC는 미국인들에게 최고의 공중보건을 제공할 능력을 잃었다”며 “이는 생명을 앗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임한 데메트레 다스칼라키스(Dr. Demetre Daskalakis) 국립면역호흡기질환센터 국장은 “과학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공중보건을 해치도록 설계된 정책을 만드는 도구로 CDC를 다루는 환경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밝혔다.
CDC 총격사건과 CDC 국장 해임 사건은, 과학보다 정치를 앞세운 정치가들이 만들어낸 문제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공중보건 정책 대신 정치적 신념이 우선시되는 상황에서, 누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것인가. 백신 접근성이 제한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의료 접근성이 낮은 한인과 같은 이민자들, 농촌 지역, 저소득층, 장애인, 어린이들이다.
과학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현재까지 인류가 찾아낸 가장 신뢰할 만한 지식 체계다. 정치적 신념이나 이념적 편견이 과학적 근거를 압도할 때, 그 대가는 결국 시민들이 치른다. 미국 CDC에서 벌어진 일은 정치적 권위가 어떻게 구축되고, 공중보건이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이다. 진정한 권위는 강제가 아닌 신뢰에서 나온다. 정치가들은 권위와 폭력만 내세우기보다, 과학적 근거와 투명한 소통, 그리고 공익을 우선시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권위의 공백은 혼란을 낳고, 혼란은 결국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