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보르게세 (Borghese) 공원과 도시 중심가 가까이 있는 건물 4층을 개조한 숙소는 완벽한 위치였다. 가고 싶은 곳 걸어서 찾아갈 수 있었고 이동하지 않고 한곳에 머무니 마음도 여유로웠다.
숙소의 넓은 방들의 벽과 천정의 그림들이 문을 열어준 문화도시를 찾아 나섰다가 건물사이로 바람에 펄럭이던 태극기를 보며 “아하!” 했다. 내가 어디서 왔음을 상기시켜 줬다. 오랜 역사의 흔적으로 질펀한 도시에서 나는 5천년 역사를 가진 모국을 겹쳐봤다. 남은 것과 사라진 것들, 대대로 지켜온 것과 버린 것들, 그리고 변화된 것들이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주었고 현시대와 어떤 융화를 이루나 생각하며 가로수로 심어진 화사한 꽃을 즐기다 무궁화도 봤다. 한국은 멀고도 가까이 있었다.
로마를 찾은 것은 종교적 목적이었지만 세계 최대의 고대 문화지라 콜로세움, 로마 포르마, 펜티온, 트라비 분수, 스페니시 스텝스, 여러 광장 등 명소를 다니면서 그곳에 있던 포탈을 통해서 타임 트레블을 했다. 로마 황제들이 군림했던 흔적은 온갖 풍파를 거쳤지만 여전히 찬란한 영광이었다. 2천년의 부귀와 영광 뿐만 아니라 부정과 부패, 가난과 희생, 인간 최대의 미덕과 최악의 본성까지 점철되어 있어도 로마가 사랑하는 도시로 영원히 세상에 머문 저력을 고대의 기둥 하나라도 살려서 복원, 개축한 건물들을 보면서 느꼈다.
콜로세움은 이른 아침이었지만 인파로 붐볐다. 콜로세움의 얽어진 돌 벽에 손을 댔다. 뭔가 느낌이 전해 올 듯했는데 냉정했다. 환성이나 비명이 사라진 거대한 극장에는 뜨겁게 일렁이는 햇볕이, 전 세계에서 찾아온 수 많은 관광객들이 쏟은 탄성의 언어가 채웠다. 가까이 있는 포로 로마노 (Roman Forum), 고대 로마인들의 정치와 생활 중심지는 세월의 무상함이 가득했다. 넓게 흩어진 폐허로 여기저기 남은 기둥이나 건물 조각이 그리고 바닥에 뒹굴던 부셔진 잔해들이 제각기 스토리를 풀어내며 “나 여기 있소” 했다. 원래 모습은 잃었어도 위대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간직한 당당함이 나를 제압했다.
판테온 (Pantheon)은 고대 모든 신을 위한 신전으로 영적 기운이 모여서 하늘로 향하던 장소였다. 기원전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신의 보호로 여전히 건재했다. 오랫동안 가톨릭의 성당이었던 흔적이 내부에 가득해서 경이감이 일었다. 거대한 돔 천정의 중앙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온 빛을 따르면서 천천히 돌다가 본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의 무덤은 영원을 순간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트레비 분수 주위는 낮과 밤에도 사람들에 밀려서 고요함이 없었다. 사람들을 밀치고 가까이 다가가서 딸과 손주는 동전을 던졌고 남편과 사위는 멀찍이 선 구경꾼이었다.
고대의 흔적에서 받은 강력한 감정에 체해서 매일 저녁잠을 설쳤다. 그러나 로마에 왔으니 로마사람처럼 행동하자고 한 각오는 아주 쉬웠다. 지역 사람들이 온전한 로마인들이 아니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라 마치 미국사회 같았다. 오래전 유럽에서는 일본어 안내문을 많이 봤는데 이곳의 모든 안내문은 엄청난 숫자의 중국 관광객들로 이탈리아어, 영어 그리고 중국어였다. 그리고 걷다가 ‘한인연합침례교회’ 한글 사인을 보고 가서 열린 문 사이로 단출한 성전을 봤다. 카톨릭 성당과 전혀 다른, 맨 낯 같았다.
보르게세 미술관을 돌면서 안내인이 많은 원작은 나폴레옹이 가져가서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설명에도 눈앞의 모사품에 받은 감동은 줄지 않았다. 공원의 한쪽에 있던 놀이터로 뛰어갔던 손주가 몇 분 되지 않아 돌아왔다. 철봉에 뛰어 올라 빠르게 건넜지만 태양이 뜨겁게 달군 철봉에 손바닥이 붉게 화상을 입었고 중앙에 피부가 떨어져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약을 바르니 며칠 후 손바닥은 회복했고 피부가 떨어진 부위들은 짙은 색깔이 됐다. 사위가 예수님의 손바닥에 있는 못 자국 같다고 하자 손주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이가 신과 가까워지는 과정에 나는 기뻤다.
티그레 (Tigre) 강변을 걸으면서 주위의 푸른 나뭇잎들이 녹아들어간 강물의 색깔에 반했고 강변에서 기타 치며 노래하던 남자의 음성에도 배여 있던 과거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었다. 역사는 아무리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그 자랑스런 기록속에 포함되어 있는 불편한 진실은 숨길 수 없다. 누군가의 구두로, 혹은 노래로, 비극으로 또한 영원한 예술작품으로 세상에 드러냄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