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서 어머니 오랜만이에요.”
낯익은 목소리. 15년 전에 한국으로 돌아간 혜진이 엄마가 다시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연락을 해왔다. 혜진이 엄마, 그녀는 20년전 내가 미국에 왔을 적에 처음 만났고 나의 이민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었던 사람이다.
미국 도착한 다음날 바로 학교로 가게 된 우리집 큰아들 민서는 어리둥절 아무것도 모르니 혜진이 꽁무니만 쫓아다녔을 것이다. 우리보다 2년이상 먼저 와 적응 잘하고 있던 그녀와 딸은 우리에겐 구세주 와도 같은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ABCD도 모르던 아들과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안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내 놓고 번역하며 그날 배운 것과 안내문으로 보이는 것을 체크하고 모르면 바로 우리의 도움이 혜진이 엄마를 불렀다.
매일 이런저런 일들을 묻고 하는데도 짜증한번 내지 않던 그녀와 혜진이 덕분에 아들과 나는 빠르게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친해진 아이들은 자주 어울려 뒷마당에서 뛰어 놀았고 그 덕분에 다른 엄마들과 도 함께 어울려 지내게 되었다. 남편이 일하는 회사는 경상도 울산에 본사를 두었기에 주재원으로 나온 가정 대부분이 경상도 분들이었다.
경상도에선 아줌마를 ‘아지매’라 부르던데 그 말이 재밌고 부르기 좋아 나도 그녀들과 친해진 이후부터는 “시끌시끌 경상도 아지매들”이라며 장난스레 불렀다. 그녀들의 말은 크고 빠르고 알아듣지 못하는 사투리까지 정말이지 웃고 떠들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너무 시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했다. 그 와중에도 혜진이 엄마는 조용하고 천천히 말해 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결혼해서 남편 따라 울산으로 가서 살게 되었는데 그때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서 자란 나는 목욕탕에 가서 놀란 경험이 있다. 찜질방에 들어가 땀을 빼려고 앉았는데 옆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들이 큰소리로 싸우는 것처럼 시끄럽게 떠들기에 왜들 저러나 싶어 쳐다보니 서로 깔깔거리며 남편 흉인지 하소연이지 대충 알아들을 소리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날 이후로 나는 아줌마들 모여 있는 곳엔 피해서 앉아 있었다. 그래도 5년을 경상도에서 살다 보니 어느새 내 귀에 들려오는 경상도 사투리와 말씨는 조금은 투박하고 멋없어 보이던 것이 점점 다정하고 맛깔나는 소리가 되어 친근 해져 갔다.
결혼 6년차에 미국으로 출장을 다니던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오게 되었고 처음 정착한 마을은 우리 가족에겐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되었다. 그 안에서 함께한 경상도 아지매들은 때론 멀리 있는 가족보다 더 친밀하고 서로를 살피는 그야말로 고향 사람들이 되어갔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다가 회사 임기를 마친 가정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혜진이네도 5년차에 한국으로 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다.
좋아하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일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 아픈 일인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던 날 우리 아지매들은 여지없이 눈물을 흘렸다. 떠나는 사람보다 남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외롭다는 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어 한동안은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들과는 가깝게 지내지 않기로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가는 사람 붙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라 하신 아버지 말씀처럼 사람 인연은 그렇게 흘러 가는 것이었다.
남은 가정들도 저마다의 때가 되니 하나, 둘 남편 직장을 따라 혹은 아이들의 학교에 따라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의 길을 가고 있던 고향 사람들이 이번에 혜진이 엄마가 다시 오게 되면서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하니 모두 같은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와 중간지점에 살고 있는 한 아지매 집에 모였다.
15년 만에 보게 된 얼굴들은 세월이 비껴 갔는지 “어쩜 그대로 하나도 안 변했다.” 라는 말로 시작하여 20년전 기억들을 모조리 꺼낼 듯이 집안이 들썩거릴 만큼 서로 간직한 추억들을 앞다투며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오랜만에 처음 만났을 적의 정신없던 그날이 떠올라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시끌시끌 경상도 아지매들 다시 모였네. 반갑 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