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올리면 어쩐지 남성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대통령의 연설, 대기업 CEO의 인터뷰, 뉴스 속에서 비춰지는 권력자의 모습은 대부분 남성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들은 “세상은 남자들이 움직인다”라고 믿어 왔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일상으로, 조금만 더 가까운 곳으로 돌려보면 다른 풍경이 보인다.
‘쉬코노미’(She-conomy) 즉, 여성이 경제의 주체가 되는 현상은 더 이상 특정 분야의 트렌드가 아닌, 글로벌 경제 전체를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다. 시사 주간지 타임이 처음 사용한 이 용어는 여성이 수동적 소비자에서 벗어나 경제의 방향을 결정하는 능동적 주체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 통계는 이러한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은 전체 가계 소비 지출의 80% 이상을 주도하며, 구매 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영향력은 패션이나 화장품에 국한된다는 편견을 넘어선다.
수조 달러 규모에 달하는 전 세계 미용 시장 및 웰니스(Wellness) 시장은 쉬코노미의 힘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2032년까지 1조 4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이 예측되는 이 거대 시장의 동력은 현대 여성 소비자의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쉬코노미는 단순한 소비 트렌드가 아니라, 새로운 경제 질서다. 여성은 수조 달러의 구매력뿐만 아니라, 포용성, 지속가능성, 진정성, 커뮤니티라는 새로운 가치 체계를 중심으로 시장 수요를 집단적으로 형성하고 있다.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의사 결정 과정이 더 협력적이고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소설, 드라마, 음악, 예술 등 문화 콘텐츠 시장에서 여성 창작자와 소비자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이들이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이야기와 감정은 우리 사회의 담론을 형성하고 시대정신을 정의한다.
만약 여성들이 보석, 명품, 화장품, 미용실을 외면한다면 어떻게 될까.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증발하고 거대한 공급망이 붕괴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현실이다. 한국의 성형외과 산업만 해도 연간 10조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압구정동은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드는 ‘뷰티 메카’로 자리 잡았다. 이 모든 현상의 중심에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열망이 있다.
더욱 흥미로운 사례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경제 효과’다. 그녀의 2023년 콘서트 투어는 1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창출했는데, 이는 티켓 판매액만이 아니다. 콘서트를 위해 새 옷을 사고, 메이크업을 받고, 액세서리를 구매하는 여성 팬들의 소비가 지역 경제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미국 일부 도시에서는 스위프트 콘서트 개최일에 호텔, 레스토랑, 뷰티숍 매출이 20~30% 급증했다. 여성들의 ‘팬덤 소비(충성소비)’가 어떻게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전체 경제를 자극하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패션 시장에서 여성의 영향력은 더욱 미묘하면서도 강력하다. 계절마다 새롭게 채워지는 옷장들 뒤에는 여성들의 심미안이 작동한다. 심지어 남성 패션조차 여성의 취향과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직접 구매하지 않더라도 조언자, 동반자, 영감을 주는 존재로서 패션 트렌드를 이끌어간다.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도 여성의 힘은 다층적으로 작동한다. 클레오파트라나 엘리자베스 1세처럼 왕좌에 앉은 여성 리더들도 있지만, 더 흥미로운 건 무대 뒤에서 작동하는 영향력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공식적으로는 퍼스트레이디였지만, 그녀의 정치적 네트워크와 조언이 클린턴 행정부 정책 결정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결국 세계를 움직이는 진짜 힘은 거창한 정책이나 자본 투자만이 아니다. 여성들이 자신에게 쏟는 사랑과 관심, 그리고 그들의 선택과 취향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소비의 물결이야말로 현대 경제의 숨은 엔진이다. 여성의 영향력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하다. 바람이 보이지 않아도 파도를 움직이는 것처럼, 여성들의 선택은 거대한 산업과 시장, 나아가 세상의 흐름마저 바꿔놓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권력이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그 권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은 여성의 의지와 욕망, 삶의 선택들이다. 결국 세상은 두 이미지 위에 동시에 서 있다.
‘남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하지만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다.’ 이 유명한 말은 단순하지가 않다. 겉으로 드러나는 권력이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그 권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은 여성의 의지와 열망, 삶의 선택들일 것이다.
결국 세상은 두 이미지 위에 동시에 서 있다. 겉으로는 강한 남성의 손이 세상을 움켜쥔 듯 보이지만, 그 손을 어디로 움직일지 속삭이는 목소리, 또 말없이 이끄는 흐름은 여성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조화로운 긴장 속에서 오늘의 세상이 이렇게 굴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