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 세계 가솔린 가격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변화와 지속되는 모순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란이 정부 보조금의 힘으로 갤런당 0.11달러라는 경이로운 세계 최저가를 기록하며 정상에 올랐다. 미국인들이 커피 한 잔 가격으로 자동차 연료탱크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놀라운 현실이다.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가 여전히 최저가 국가들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지만, 산유국들의 내부 정치적 격변과 경제 제재로 인해 순위에는 상당한 변동이 있었다.
반면 홍콩에서는 갤런당 13.00달러라는 천문학적 가격을 지불해야 하며, 이는 이란 대비 무려 118배나 비싼 수준이다. 미국조차도, 현재 갤런당 3.16달러로, 여전히 많은 국가들보다는 저렴하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상당히 오른 상태다. 이러한 극심한 가격 차이는 단순히 원유 매장량의 차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를 보여준다.
100여 년 전 존 록펠러가 스탠더드 오일을 통해 구축한 정유업계의 강력한 영향력이 형태만 바뀌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록펠러가 당시 미국 석유 생산의 90% 이상을 독점하며 현재의 빌 게이츠보다도 3배 많은 자산을 축적했듯이, 현대의 석유 거대 기업들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시장을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가솔린 가격이 하락할 때는 몇 센트씩 조금씩 내리지만, 상승할 때는 하룻밤 사이에 20-25센트씩 급등하는 현상도 여전히 관찰되고 있어 소비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그렇다면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했던 전기차 혁명은 어떤 상황일까. 현실은 예상보다 훨씬 더딘 속도를 보이고 있다. 최신 분석에 따르면, 2025년 전기차 비율이 10%로 작년대비, 1%도 안되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발표했다. 이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그토록 자신했던 전기차 시대가 아직은 요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충전 인프라의 부족, 높은 구매 비용, 그리고 여전히 제한적인 주행 거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은 룰라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에탄올 정책의 결과로, 이미 주유소에서 일반 가솔린과 에탄올을 선택할 수 있으며, 기존 가솔린 차량도 150달러 정도의 비용으로 개조하면 어떤 연료든 사용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최신 차량들의 경우 간단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도 ‘Flex Fuel’(혼합연료) 차량으로 변환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연료 시장을 복잡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지정학적 불안정성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중동의 지속적인 정세 불안이 에너지 공급망에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각국 정부들로 하여금 에너지 안보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모색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이 셰일 가스 기술의 발전으로 천연가스 생산 1 위국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전략적 의미가 크다. 하지만 셰일 가스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과 이산화탄소로 인한 환경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다.
흥미롭게도 각국의 가솔린 가격 차이는 원유 접근성보다는 세금과 보조금 정책에 더 크게 좌우된다. 모든 국가가 비슷한 국제 유가에 접근할 수 있지만, 각국 정부가 부과하는 세금과 제공하는 보조금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같은 산유국에서도 높은 탄소세 때문에 가솔린 가격이 상당히 높은 반면, 베네수엘라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정부 보조금으로 인해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다.
중국의 급속한 자동차 보급 확산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는 자동차 번호판 경매가가 1만4000달러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으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뜨겁다. 성비 불균형으로 인해 결혼 적령기 남성들 사이에서는 자동차 소유가 배우자 선택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를 빗댄 “BMW(Be My Wife)”라는 표현까지 생겨났다. 미국은 자동차가 성숙한 시장이지만, 중국은 인구 대비 차량 보급율이 낮아 자동차 시장 잠재력이 크다고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것은 정유업계의 로비력과 기존 인프라에 대한 의존성이다. 미국처럼 자동차의 기술력 뛰어난 국가에서도 브라질 수준의 연료 다양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복잡한 이해관계의 결과다. 수십만 개의 주유소, 정제시설, 운송망이 모두 석유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는 상황에서 급진적 변화는 엄청난 비용과 저항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은 분명히 감지되고 있다. 각국 정부들이 설정한 탄소 중립 목표와 기후 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면서, 연료 시장의 다각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브라질의 에탄올 정책이나 세계 10위권 산유국인 노르웨이의 전기차 보급 정책이 보여주듯, 정치적 의지와 일관된 정책 추진, 그리고 기술 혁신이 결합된다면 기존의 독점 구조도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