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 빨간 신호등 앞에서 차를 세우고 기다리는데, 한 사람이 쇼핑몰 카트를 밀고 지나갔다. 카트에는 빵빵한 검은 비닐봉지가 높이 쌓여 있었다. 노숙자 같다. 두툼한 외투, 굽은 어깨, 절뚝거리는 걸음. 흑인인지 백인인지, 히스패닉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뉴스는 13년 만의 한파라고 하는데 노숙자들은 어떻게 추위를 버티고 살까?
애틀랜타 지역의 노숙자는 약 3000명(조지아 주 전체엔 1만3000명)이라고 한다. 교회들은 봉사자를 모집하고, 미션 아가페 같은 단체는 겨울 점퍼를 나누고 식사를 제공한다. 정부와 자선단체도 돕는다. 급식, 방한용품, 임시 거주지 마련, 상담, 재활, 자립 교육까지. 그런데도 노숙자는 줄지 않는다고 한다.
공원 숲길을 걷는다. 겨울 숲은 낙엽이 쌓여 온통 갈색인데, 걷는 길가로 초록색 솔잎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인다. 길가 큰 나무들 밑에 있는 어린 소나무는 작고 초라하고 비틀어져 있고 죽은 것도 있다. 자세히 보니 길가에서 죽어 가는 작은 나무들은 소나무만이 아니었다. 참나무도, 단풍나무도, 이름 모를 관목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어 가는 어린 나무들은 길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숲속 깊은 곳에도 많다. 그들은 대개 큰 나무 그늘 아래에 있다.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비틀어지고, 작아지고, 그러다 죽는다. 죽어 가는 초라한 모습을 보니 노숙자들이 생각난다.
소나무 씨앗들은 철 따라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날아가고, 도토리는 도토리나무 밑에 수북이 떨어진다. 그리고 씨에서 싹이 튼다. 아주 많이 싹이 튼다. 많은 싹들은 경쟁을 한다. 햇빛을 못 받는 나무들은 약해지고 죽는다. 숲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죽는 나무들이 살아남는 나무들보다 많다.
처음엔 그늘 속에서 자라다 죽는 어린 나무들이 불쌍해 보였다. 오랜 동안 숲을 걷다 보니 보인다. 키가 작고 어린 나무 잎들은 조각난 햇살이라도 받아 잎들을 키워서 야생동물에게 먹이가 되고, 공기 중에 탄소를 줄이고 산소를 늘린다. 죽으면 썩어 숲의 퇴비가 된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뿌리로 흙을 붙잡아 빗물에 땅이 쓸려 내려가지 않게 막는다. 그늘에서 약하게 살아가면서도 먹이사슬에서 생명을 살리고, 죽어서도 큰 식물들의 거름이 되어 숲을 살려 가는 데 도움이 된다.
통계에 따르면 백인 1000명 중 1.1명, 흑인 1000명 중 5.3명, 히스패닉 1000명 중 3.4명이 노숙자라고 한다. 미국에 노숙자는 약 80만 명인데, 숫자는 더 늘어나는 경향이라고 한다. 노숙자가 되는 원인도 다양하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실직, 의료비와 보험 문제, 정신 질환, 알코올과 마약 중독, 가정폭력과 이혼으로 인한 가정 붕괴. 노숙은 어느 한 가지 이유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여러 불행이 겹쳐져 한 사람의 삶을 조금씩 무너뜨린 결과 같다.
미국 연방정부는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을 노숙 문제에 쓴다고 한다. 주정부도 예산을 많이 쓰고, 교회와 자선단체도 돕는다. 그런데도 노숙자는 늘어난다. 심지어 도움의 돈이 중간에서 새는 일도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노숙자 600명 지원을 위해 마련된 2300만달러를 비영리단체 경영자가 횡령한 사건도 보고되었다. 이런 현실을 보면 “도움이 부족해서” 노숙이 늘어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한국에서도 노숙자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내가 어렸을 때도 거지는 있었고 동구 밖에 움막이 있었다. 서울역 일대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노숙자들의 대표적인 집결지다. 대중화장실에 겨울 난방 장치가 있는 서울역과 대전역에 지금도 노숙자가 많다고 한다. 한국 정부의 지원 제도도 확대되었고, 코로나 이후 주거 정책도 바뀌면서 일부 노숙인들은 시설이나 임시 주거지로 이동했다고 한다.
복지국가의 대표 격인 미국에도 노숙자는 많고, 공산 사회주의 국가의 대표인 중국에도 많다고 한다. 중국은 올해 역사상 최고로 많은 대학 졸업자가 쏟아져 나오는데 그들의 일자리가 없다고 하니, 배운 노숙자들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이제 세상은 더 빠르게 변한다.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을 대신하는 비율이 늘어나면서 실직은 늘어나고, 삶의 방식이 바뀌는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노숙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늘어나지 않을까?
숲속 씨앗들 중에서도 운이 나빠 길가에 떨어지거나 큰 나무 밑 그늘에 떨어져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는 어린 나무들이 있듯이, 노숙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준비한 전문 지식이 때를 잘못 만나거나, 불행한 트라우마를 겪거나, 삶이 무너지는 순간을 겪고 노숙인이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지역 히스패닉 노숙자들에게 한국의 컵라면과 치킨 수프가 인기라고 한다. 몇 분이 추위에 떠는 그분들께 컵라면과 치킨 수프를 대접했더니 너무 좋아하고, 행사가 반복되는 사이에 수요자나 공급자가 늘어났다고 한다. 불행한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작은 도움의 손길, 그 외에 우린 무얼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