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의 결정을 내린다.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선택의 연속은 마치 인생이라는 항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현대 사회는 선택권의 확대를 자유의 핵심적인 상징처럼 여긴다. 아침에 눈을 떠 어떤 옷을 입을지부터 점심 메뉴, 일과 후 시청할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 풍요로운 선택 속에서 ‘우리는 더 행복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흥미롭게도 수많은 연구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우리의 불안과 피로는 오히려 증가하며, 만족감은 현저히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를 ‘선택의 역설’이라고 한다.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결정을 내리면서도, 사실은 그 결정의 무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마트의 샴푸 코너를 생각해 보자. 수십 가지 브랜드와 기능성 제품들이 저마다 최고의 선택이라고 외칠 때, 우리는 그 앞에서 길을 잃는다. 넷플릭스 리모컨을 들고 소파에 앉아 ‘오늘은 뭘 볼까?’ 고민하며 추천 목록을 20분 넘게 훑다가,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유튜브에서도 짧은 내용의 영상 위주로 시도해 보게 되고, 옵션이 복잡한 온라인몰에서 ‘아무것도 못 고르고 떠나는’ 선택 회피 행동 역시 같은 맥락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질수록 결정에 따르는 피로도가 높아져, 결국 우리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잼을 24가지 종류로 진열한 매장보다 6가지만 진열한 매장에서 실제 구매율이 10배 높았다는 유명한 연구 결과는 이 역설을 명확히 증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결정을 힘들어하는 것일까? 단순히 선택지가 많아 피곤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후회’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기회비용’이라 부르기도 하겠지만, ‘후회 회피’ 성향에 가깝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은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우리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실망감을 피하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한 선택’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우리가 인정해야 할 사실은, 완벽한 선택이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그 순간 주어진 정보와 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의 선택’뿐이다.
이러한 현상을 그저 개인의 우유부단함이나 ‘결정 장애’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어쩌면 이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무한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덜 피로하게, 덜 후회하게, 덜 망설이게 만드는 ‘선택의 디자인’이 필요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핵심을 짚어주고, 개인의 가치관에 맞는 선택지를 현명하게 Curation (가치선별)해주는 기술과 사회적 장치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물론, 결정이란 건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 내가 고른 셔츠의 색깔, 저녁 메뉴, 친구에게 건넨 말 한마디에는 그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 그리고 그날의 기분까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결정은 그 자체로 한 사람의 ‘작은 철학’이다. 누군가는 ‘결정 장애’라며 스스로를 탓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만큼 다양한 삶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기에 ‘결정의 풍요로움’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고민한다.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메뉴를 고를지, 어떤 영화를 볼지. 그리고 그 치열한 고민 속에서 조금 더 나은 나를 찾아간다. 때로는 그 우유부단함 속에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 속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과 웃음이 피어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선택의 바다를 어떻게 현명하게 항해할 수 있을까?
선택의 이면에 숨어있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여 막연한 불안감을 구체화하고, 완벽한 결과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결정의 ‘과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가 기대와 다르더라도 최선을 다한 과정에서 배움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늘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존재하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며, 이 크고 작은 결정들이 모여 우리 각자의 고유하고 찬란한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우리는 때로 이 결정의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고, 때로는 지치기도 하며, 심지어는 옷 하나 고르는, 사소한 일로 약속에 늦는 경험도 한다. 이처럼 일상의 모든 결정들은 우리의 하루를 만들고, 그 하루들이 모여 마침내 소중한 인생을 이루게 된다. 망설이고 주저하는 순간들, 때로는 우연에 맡겨 보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런 생각 없이 빠르게 결정하기도 하지만, 이 모든 과정 자체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매 순간 내리는 결정들은 우리의 개성을 드러내며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이 사소해 보이는 선택들이 때로는 따뜻한 웃음을 선사하고, 서로의 삶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결정을 응원한다면, 오늘과 내일은 조금은 더 가볍고 재미난 하루가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