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은 존경하거나 닮고 싶은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꿈거울’ 정도가 될 것이다. 롤모델은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고, 나의 성장과 잠재력 발현에 도움을 준다.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인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인물 등을 통해 우리는 영감을 얻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롤모델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강희제다. 강희제는 중국의 역대 황제 약 230여 명 중 유일하게 ‘천년에 한번 나옴직한 제왕’이란 뜻의 ‘천고일제’란 호칭을 얻은 청나라의 4대 황제다. 그는 중국의 역대 황제 중 재위기간이 61년으로 가장 길게 왕위를 유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단순히 오랫동안 천하를 통치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중국 지도자들조차 가장 본받고 싶어하는 최고의 리더십을 발휘한 주인공이 된 것은 한 마디로 피를 토할 정도로 노력하는 리더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강희제는 왕자 시절부터 부지런하기로 유명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대궐의 모든 어른들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했으며 오전 8시부터 공부를 시작해 끝나는 시간이 보통 저녁 8시일 정도로 학문에 정진했다. 이런 공부 습관과 새로운 학문에 대한 호기심은 황제가 되어서도 계속되어 단 하루도 책을 멀리한 적이 없었다. 청나라 황자의 교육제도는 강희제 때 정해졌다. 강희제는 황후들과 후궁들 사이에서 모두 56명의 자녀를 두었다. 교육을 매우 중시해서 그 많은 자녀와 손주들을 올바르게 길러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황자와 황손은 6세 때부터 서재에서 공부했다. 황자들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오후 6~7시까지 공부했다. 1년 중 휴가는 새해 첫날과 그 전 두 차례 반나절 뿐이었다. 춥든 덥든 매일 똑같았다.
강희제의 리더십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국궁진력의 정신이다. 이 말은 제갈량이 후주 유선에게 피를 토하면서 올렸던 ‘후출사표’에 나오는 글귀이다. 즉 국궁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굽혀’최선을 다한다‘라는 뜻이다. 사실 제왕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오히려 신하의 입장에서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 쓰기에 적합한 것이다. 당연히 강희제의 신하들도 이 점을 지적했지만, 강희제는 “나는 하늘의 신하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 당신들은 퇴근해 잠시 쉴 수도 있고 은퇴하면 손자와 다정하게 놀 수도 있지만, 나는 단 하루도 쉴 수가 없는 제왕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또한 “제왕이 오늘 한두 가지 일을 미루어 놓으면 내일 한두 가지 더 미루어야 할 일이 생긴다. 그러므로 단 한 가지도 오늘 할 일은 미루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실제로 하루에도 200~400여 개의 각종 상소문을 직접 다 읽고 처리를 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 상소문에 잘못된 표기나 오기가 있으면 이를 붉은색으로 바로잡아 내려보냈다 하니 그의 노력과 정성 그리고 치열한 자기절제는 가히 그 예를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강희제는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안일을 추구하고 일을 싫어하나, 짐은 항상 일을 하면 편안했다. 만약 안일함에 빠져 있었다면 안일하다는 것을 모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생겼을 때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자고로 ’역(易)‘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의 운행은 강하며, 군자는 쉬지 않고 스스로 강하게 한다.” 그는 성인들이 모두 힘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일종의 복으로 간주했고, 안일을 화로 간주했다. 강희제는 평생 이렇게 스스로를 다잡았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질병, 3대 명절, 중대 변고 발생 시 외에는 거의 하루도 정무에 빠지지 않았다.
강희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약 4만9000여 자의 한자가 수록된 한자사전인 ‘강희자전’을 비롯해 수많은 서적과 기록을 남겼고, 학문적으로도 유학에 치중하지 않았으며 불교, 예수회까지 아울렀다. 그는 다양한 학문에 넘치는 호기심을 보였다. 서양 선교사들의 활동에 자유를 보장해 주는 댓가로 그들로부터 천문학, 수학, 과학을 도입했다. 한족 출신 유학자들로부터는 주자학과 유학을 배웠다. 학문뿐이 아니었다. 드넓은 만주 땅을 달리던 만주족의 기상도 잃지 않았다. 틈틈이 사냥도 즐기는 등 무예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만년에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감개무량하게 재위 61년을 이렇게 술회했다. “부지런히 애쓰며, 주의깊고 신중했다. 조석으로 겨를이 없고, 일찍이 조금도 느슨한 적이 없었으며, 수십 년을 하루같이 몸과 마음을 다했다.” 강희제는 자신의 일언일행으로써 수신하고 덕으로 다스려 후세에 모범을 보였다. 강희제 재위 61년은 한마디로 자기와의 치열한 투쟁이었다.
나에게는 인생을 관통하는 조용한 내면의 다짐이 있다. 자강불식(自强不息). 스스로 힘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미 몸은 노쇠했지만, 다시 한번 가능성에 인생을 걸어보고 싶다. 노목처럼 소슬하되 다소곳하고, 우람하되 고즈넉하게 노년의 삶을 다듬고 싶다. 새벽녘 해돋이에 맞겨룰 저녁노을 같은 마무리로 아흔이 내일모레인 여든 넘은 나이를 가다듬고 싶다. 사람은 꿈을 잃을 때 늙는다. 세월은 얼굴을 주름지게 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을 잃을 때 영혼이 시든다.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탐구하는 노력을 멈추면 두뇌는 녹슨다.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늘 새로운 일에 감동하고 탐구하는 삶을 살고 싶다. 여생을 현역으로 살고 싶다. 인생의 최후까지 나 자신을 연소시키면서 살고 싶다. “저렇게 지는 거였구나/한세상 뜨겁게 불태우다/금빛으로 저무는거였구나.” 온라인에서 본 어느 분의 ‘저녁노을’이라는 시다. 단 세 줄로 구성된 시 속에 함축된 정서의 울림이 내 마음을 뒤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