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친구 부부들이 모여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마주 앉아 웃음과 안부를 나누는 자리였다. 우리 모두가 늙어 노인이 된 탓일까? 대화 속에는 어느새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며들었다. 오랜 병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이야기,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환자들의 이야기도 이어졌다.
그때였다. 화장실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어났다. 누군가 쓰러졌다는 소리였다. 식당 직원이 달려가고, 우리도 뒤따라갔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었다. 화장실로 가던 길에 그만 복도에 쓰러져 있었다. 남자들이 급히 그를 부축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차로 옮겨 앉히는 동안, 모두의 얼굴에 당혹과 두려움이 어렸다.
다음 날 전화를 했다. 그는 밤새 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앰뷸런스를 불러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진단은 척추 골절. 수술이 아니라, 뼈에 시멘트를 주입하는 시술을 받으며 입원 중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오래전 한 장면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친구의 장모님이 넘어져 입원했다가 퇴원하던 날이었다. 휠체어에서 차로 옮기는 순간, 할머니의 장딴지가 드러났다. 그 광경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살은 사라지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다리. 그 할머니는 그 후 딸의 집과 요양원을 오가며 일 년을 힘겹게 버티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식당 복도에 쓰러진 사람이 어쩌면 그분이 아니라 내가 될 수도 있었겠 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다. 걸음은 느려지고, 균형 감각도 예전 같지 않다. 지금이라도 넘어지지 않기 위한 준비를 한다면, 이 늦은 나이에도 낙상의 위험을 줄일 수 있을까? 등산 모임에서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조용히 짚어 보았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를 하자. 늙어갈수록 다리 근육을 살리는 운동이 절실하다. 미국에서는 매년 4만 명 이상이 낙상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는 통계가 있다. 넘어져 골절을 당한 뒤 몇 달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많고, 입원 기간 동안 전신이 급격히 쇠약해져 생을 마감하는 일도 적지 않다.
아직 건강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있다. 매일 걷기, 집에서 트레드밀이나 실내 자전거 타기, 텔레비전을 볼 때에도 앉아 있기보다 의자 뒤에 서서 몸을 움직이기, 한 발로 서서 균형 잡기, 낙상 예방 운동에 참여하기, 체육관에 꾸준히 나가 근육을 기르기. 찾아보면 방법은 많다. 작지만 꾸준한 노력들이 쌓여, 늙은 몸을 지탱해 줄 것이다. 내 주변에는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건강하게 걷는 분들이 있다. 매일 체육관에서 30분씩 걷고 근육운동을 하는 분, 그리고 지금도 제자들을 가르치는 태권도 명인. 몸을 쓰는 사람은 늙어도 무너지지 않는다.
죽음을 준비하자. 사전 의료 지시서, 유언장, 리빙 트러스트를 미리 작성해 두는 것. 의식이 없을 때 어떤 치료를 받을 것인지 분명히 해 두면 나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고통도 줄일 수 있다. 재산 문제로 가족이 다투지 않도록 정리해 두고, 신탁을 통해 사후 절차를 간소하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장례에 대한 뜻이 있다면 미리 적어 두자. 자녀들이 고민하지 않도록 길을 열어 주는 일이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한 통의 편지를 써 두는 것.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남은 이들의 가슴에 오래 남는다.
마음의 평안을 연습하자. 친구들이 하나 둘 병들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죽음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님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태어날 때도, 그리고 죽을 때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 문득 들판의 잡초가 떠오른다. 봄에 싹이 나고, 여름에 자라며, 가을에 씨를 남기고, 겨울이 오면 조용히 사라지는 풀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인생의 봄에 태어나 여름에 살고, 가을에 자녀를 남기고, 겨울에 이르러 떠나는 것. 그 질서 속에서 나는 여기까지 왔다. 내 뜻대로 살은 줄 알았는데 보다 큰 질서 속에서 나는 살려졌다. 이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감사한 삶이다. 이제 남은 시간 나는 평안하게 살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자는 시간을 지키고, 식사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며, 가까운 사람들과 계속 어울려 살아가고 싶다. 들판의 풀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듯, 나 또한 외톨이가 되지 않고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살고 싶다.
내가 죽은 다음에도 우리의 자손들일 살아갈 세상도 큰 질서에 의해서 아름답게 운영될 것이다. 매일 살아가는 일상속에서 감사 하나를 찾아내는 연습을 하여, 감사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고, 이 세상 그대로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감사함 마음으로 살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