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영화 ‘Roman Holiday’ 에서 해방감을 만끽한 주인공의 스토리에 반했었다. 나도 로마에 왔으니 자유로운 나들이를 하려고 어느 아침 가족들이 자는 사이에 혼자 고도시로 나섰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스페니쉬 스텝으로 가서 언덕 위의 성당에 들렀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과 분숫가에 몰려서 사진을 찍는 수 많은 관광객들을 피하며 ‘Keath-Shelley 기념관’ 앞에 섰다. 며칠 전, 분숫가에서 두 손으로 물을 받아 얼굴과 머리를 식히던 손주를 보다가 내 눈에 든 기념관 사인이 나를 불렀다. 영국의 두 낭만파 시인들의 기념관은 폐결핵 휴양차 따스한 로마로 왔던 존 키츠가 25살에 사망한 집이다.
10년 전 영국 남부를 여행하다가 들린 대 저택의 정원에서 작은 채플의 벽에 존 키츠가 그곳에서 시 ‘Bright Star’ 썼다는 사인을 보고 가슴이 뛴 후부터 나는 그의 시를 찾아 읽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 세상을 본 창문 아래에 서서 그가 본 로마의 하늘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마침 기념관이 일주일 문을 닫은 것에 아쉬웠다가 주변 거리로 나섰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포폴로 광장으로 이어지는 긴 삼각형 지역은 오랫동안 예술가들의 근거지여서 많은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찾는 것은 쉬웠다. 번화가인 그 지역에 머물며 활보했던 키츠와 셀리, 바이런, 스트라빈스키와 푸치니를 생각했다. 프랑스의 작가 장 콕토가 피카소와 함께 지냈던 곳에서는 그의 짧은 시 ‘귀’를 읊었다.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소리 그리워라’. 그리고 트루먼 카포티가 단편소설 ‘Lola’ 를 쓴 곳과 로마의 휴일 영화를 찍으러 온 그레고리 펙의 아파트가 있었던 아름답고 한적한 좁은 뒷골목의 벤치에 앉아 쉬면서 만족했다. 잠시지만 거리는 완전히 내 독점이었다.
18세기에 괴테가 2년 살았던 집, 괴테 기념관은 거리의 복잡함이 없는 깔끔한 공간이었다. 유일한 방문객이라 여유롭게 방 마다 다니면서 그의 책들과 로마 정경의 스케치, 그림들과 편지들, 24편의 시, ‘Roman Elegies’의 배경에 친근감을 가졌다. 그가 아침에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본 정경이라는 그림을 본 방에서 순간 이곳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의 생가에서 받았던 감정과 전혀 다른, 가벼움을 느꼈다.
괴테의 기념관에서 나와서 걷다가 한 건물 앞에 워싱턴 포스터 신문에 그린 컬러풀한 그림에 끌렸다. 신문 일면의 기사는 그림과 멋지게 어울려 3차원 분위기를 자아냈다. 작은 화랑에서 작품을 전시중인 중국화가 Juanni Wang은 상하이 대학을 졸업하고 그림 공부하러 로마에 왔다가 10년째 눌러 산다. 중년의 그녀와 나눈 대화는 나를 자극했다. 평범하길 거부하고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하는 그녀는 일년에 한번 가족을 보러 중국을 방문 한다. 예술을 특정한 룰에 결정짓지 않고 동양과 서양을 연결시키며 공기와 물처럼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스토리를 그리는 멋쟁이 화가다. 나중에 구글로 나를 매혹시킨 그녀를 찾아봤더니 그녀의 그림이 여러 나라 미술관들과 바티칸 박물관에도 있다는 정보를 읽고 놀랐다.
작가들과 음악가들이 주로 모였던 Antico Caffee Grego의 안쪽 의자에 앉았다. 1760년에 오픈한 카페는 265년이 지나도 여전히 운영 중이다. 낡은 벨벳 의자에 앉아서 오래전 한쪽 구석에 모여 앉았던 작가들의 흔적을 따랐다.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분명 그들의 작품속에 있을 것이다. 로마의 따스한 날씨와 풍부한 유적지들은 창작열을 북돋우는 완벽한 환경이라 생각하는데 가까운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나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그는 나를 보며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알까? 상상하니 기분이 좋았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설치는 것을 잊고 커피를 마신 탓에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숙소의 책장에서 발견한 책, Roman Tales을 밤새우며 읽었다. 22명의 로마 작가들이 700년에 걸친 과거 유적과 21세기 성장통을 앓으며 과거와 현재를 끌어안고 사는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단편 모음집이었다. 로마인들을 재미있게 이해하게 도왔다. 혼자 나선 외출에서 맘껏 즐겼던 순간들, 예술에 대한 나의 끝없는 사랑은 타고르의 시 ‘Unending Love’의 구절 “… in life after life, in age after age, forever”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