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상의 한인은 학교에서 B형 간염의 위험성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한때 대한민국 인구의 10%에 달하는 사람이 B형 간염 보유자였을 정도로 매우 흔한 질병이었다. B형간염 병력이 있으면 취업, 대인관계, 결혼, 심지어 대학 진학에 문제가 있을 정도로 정도가 심했다. 그러나 이제 대한민국에서 B형간염은 거의 없어졌다. 대한민국 1982년부터 초등학교 B형 간염 예방 백신 접종이 일반화된 데다가, 1991년 신생아에게 B형 간염 백신 접종이 의무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B형 간염을 둘러싼 혼란이 미국에서 시작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B형 간염을 성병으로 규정하며 “백신 접종 시기를 출생 직후에서 12세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백신 접종자문위원 17명을 전원 해임하고 이틀 만에 새 위원들을 임명했다. 그 결과 조지아주를 비롯한 각 주는 연방 정부를 신뢰하지 못해 별도의 백신 검토 기구를 꾸리고 있다.
B형 간염 백신의 중요성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UC샌프란시스코 의대 간질환 전문의 마우리시오 보나치니 교수(Dr. Maurizio Bonacini)는 “매년 1000명의 아기가 B형 간염에 걸리고 90%가 만성으로 진행된다”며 출생 직후 접종이 간암 발생률을 크게 낮춘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그러나 정치가 과학을 집어삼키고 있다. 백신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새로운 부정적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정치적 프레임이 과학적 근거를 압도한다. 스탠퍼드 의대 소아감염병 교수 이본 보니 말도나도 박사(Dr. Yvonne – Bonnie – Maldonado)는 “미국인 90% 이상이 백신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80% 이상이 학교 백신 의무화를 지지하지만, 소수의 반대 목소리가 정치인의 입을 빌려 증폭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상황은 2020년 코로나 19 팬데믹 때와 마찬가지다. 당시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논란이 과학적 토론을 넘어 정치적 대립으로 번졌다. 의료진의 권고보다 정치적 성향이 접종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UCSF 감염병학자 피터 친-홍 교수(Dr. Peter Chin-Hong)는 “코로나19로 작년에만 5만 명이 사망했으며, 노인, 임산부, 영유아, 기저질환자는 여전히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과학의 정치화가 공중보건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점이다. 백신 접종률이 떨어지면 집단면역이 무너진다. 노약자 등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된다. 과거 백신으로 퇴치했던 질병들이 다시 고개를 든다.
과학은 정치적 도구가 아니다. 텍사스 A&M 바이러스 학자인 벤저민 뉴먼 교수(Dr. Benjamin Neuman)는 “백신을 다른 의약품에는 적용하지 않는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인이 과학적 합의를 무시하고 자의적 해석을 내놓을 때, 시민들은 혼란에 빠진다. 전문가의 권위가 실추되고 공중보건 정책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미국의 백신 정책 혼란은 과학적 근거보다 정치적 계산이 앞섰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정치적 소음에 휩쓸리지 말고 검증된 정보를 찾아야 한다. 과학의 정치화는 결국 모두의 손실이다. 정치는 일시적이지만 질병은 영구적이다. 백신이라는 성과를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