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인 이민자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어느정도 죄책감을 느낀다. 부모가 되어서 아이들 앞에서 영어 유창하게 못하는 죄, 아이가 영어 숙제를 가져와도 못가르쳐주는 죄, 맞벌이로 바빠서 아이들 못챙기는 죄, 타인종 부모들처럼 특별활동 못보내는 죄, 라이드 못해주는 죄 등등이다. 아이가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자랐다면 이런 설움이나 죄책감은 없지 않을까, 필자 뿐만 대다수 한인 학부모들도 비슷한 상황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한인 학부모에게 한가지 죄가 더 생기게 됐다. ‘부모가 미국 시민권자가 아닌 죄’다.
이제 “미국에서 태어나는 것만으로 미국시민이 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부모가 시민권자, 영주권자가 아니면, 아이가 미국에서 태어나도 미국 시민권을 받을수 없을지도 모른다. 서류미비자 뿐만 아니라 취업비자, 학생 비자 등 합법 체류자의 자녀들도 예외는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생 시민권 금지’ 행정명령 때문이다.
‘출생 시민권’은 수정헌법 14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한 모든 사람은 미국 시민이다.” 1868년 남북전쟁 이후 노예 해방 이후 흑인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조항이다. 이 조항은, 이후 150여 년간 이민자들의 자녀를 품어온 법적 토대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바로 이 토대를 겨냥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부모가 시민권자, 영주권자가 아니면, 자녀도 시민권자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트럼프 행정명령은 현재 연방대법원에서 심리중이며, 오는 6월 최종 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미국내 출생시민권자 현황은 어떠한가. 프린스턴대 필립 코너 연구원(Dr. Phillip Connor)의 추산에 따르면, 미국 출생시민권 수혜 인구는 100년간 약 7조7000억 달러의 소득을 창출했다. 앞으로 20년간 태어날 인구만으로도 1조 달러의 경제 기여가 예상된다. 고등교육 기반 직종에서만 최소 40만 명의 인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주장대로 출생시민권이 폐지되면 어떻게 될까? 이민정책연구소(Migration Policy Institute)의 줄리아 겔라트(Julia Gelatt) 부소장에 따르면, 향후 20년간 약 270만 명, 50년간 약 540만 명이 법적 지위 없이 미국 땅에 살게 된다. 이들은 공교육에서 배제되고,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며, 성인이 되어도 합법적 취업이 불가능해진다. 겔라트 부소장은 이를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구조적 취약계층의 형성”이라고 불렀다. 한마디로 “부모가 시민권자가 아닌 죄”로 아이들이 ‘하류층’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출생시민권 폐지는 미국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이민 플랫폼 기업 바운드리스의 지오 웡(Xiao Wang) 대표는 “과학자, 의사 등 전문직 이민자들은 자녀의 시민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미국 대신 캐나다나 독일, 혹은 다른 선택지를 고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 미국 의사의 25% 이상이 이민자다. 2036년까지 미국내 최대 8만8000명의 의사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이란 국가가 이민 인재 유치의 매력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셈이다.
UCLA 로스쿨의 히로시 모토무라 교수(Dr. Hiroshi Motomura)는 “출생시민권은 미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제”라고 말한다. 다시말해 “어디서 왔든, 누구의 자식이든, 미국 땅에서 태어나면 미국이라는 나라 사람이라는 약속”의 문제다. 그 약속이 바로 미국을 ‘이민자의 나라’로 만들어온 핵심 동력이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선택에 책임이 없다. 부모가 어떤 경로로 미국에 왔든, 부모의 현재 체류 신분이 어떻든 간에, 그것은 아이의 죄가 아니다. 태어난 미국 땅에서 아이를 ‘비(非) 미국인’으로 만드는 것은, 아기에게 태어난 죄를 묻는 것과 똑같다.
미국 시민권은 종이 한 장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란 사회가 구성원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대한 선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