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6
아쿠아리움이 닫히고 어둑해지면 들리는 소리가 있다,
청소 카트를 끄는 소리, 청소부 토비의 소리다. 대왕 문어에게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는 토비의 얼굴은 활짝 웃어도 그늘져 보인다. 바다가 그리운 늙은 문어가 낮의 소음에서 몸을 숨기 듯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불 꺼진 아쿠아리움을 찾는 토비의 느린 발걸음에도 그리움이 묻어 있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이 영화는 상실의 강을 건너는 너와 나,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관람객이 사라지고 적막이 찾아오면 아쿠아리움은 새로운 세계가 된다. 바다 거북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귀여운 해마는 물 속을 유영한다. 밉상인 늑대 장어마저 바닥을 떠나 자유를 만끽한다. 해파리는 푸른 빛을 뿜어 내고 모습을 감췄던 대왕 문어도 빨판을 펼치고 기지개를 켠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그들에게 수조는 보금자리처럼 아늑하다.
토비에게 수조의 생물은 가족과 같다. 특히 대왕 문어가 그렇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문어는 물이 없으면 말라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수시로 수조를 빠져나간다. 바짝 마른 문어를 발견한 토비는 죽은 아들을 놓지 못하고 무기력한 할머니로 늙어가는 자신을 보는 듯 문어와 교감한다.
영화는 아들을 잃은 토비가 가진 상실의 아픔을 아쿠아리움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통해 밀도 있게 보여준다. 수조의 빛은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들고 밤의 정적은 번잡스럽던 낮의 소음과 대비되어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 들게 한다. 그 속에서 수조의 두꺼운 벽은 포식자와 거친 풍랑을 막아주는 안전망이 된다. 해파리의 황금빛 춤사위에 미소 짓고 문어의 빨판을 온몸으로 느끼는 토비에게도 아쿠아리움은 아늑한 휴식처다. 하지만 바다를 잃어버리고 얻은 수조의 아늑함에도, 아들의 죽음이라는 수조에서 안주하려는 토비에게도 진정한 기쁨은 없다.
우리의 본능은 활력을 빨아들이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죽음을 감지한 문어의 진정한 생명력은 푸른 바다였다. 토비는 문어를 넓은 바다로 떠나보낸다. 온 몸을 활짝 펼친 문어가 사라져간 검푸른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는 토비의 모습은 저마다의 상실을 견뎌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어느샌가, 토비 역시 생명력을 뿜어 내고 있었다. 젊은 청년 캐머런은 때마침 터진 타이어 수리를 위해 잠시 마을에 머물게 된다. 둘의 만남은 토비의 삶에 엉켜 있던 퍼즐이 맞춰지는 계기가 된다. 대왕 문어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캐머런의 반지는 퍼즐의 마지막 조각으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삶의 큰 그림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는 도파민이 폭발하는 요즘 영화처럼 요란하지 않다. 토비의 상처를 구구절절 설명하지도 않고 그 상실에 섣부른 조언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해변 가득했던 아들, 에릭의 미소 뒤로 아쿠아리움 바닥을 공들여 닦아내는 토비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대왕 문어가 사라진 텅 빈 수조와 물결 따라 흔들리는 푸른 그늘의 음영이 대사도 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수조를 헤엄치는 해파리의 금빛 일렁임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대왕 문어를 만나는 순간이 온다. 영화는 그렇게 상실을 견뎌내는 시간의 흐름 속으로 우리를 조용히 끌어 들인다.
그 끌림은 우리가 간직하고 있던 어떤 기억을 건드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순간, 붙잡지 못한 시간, 이미 지나가버린 찬란한 날들. 그 시절의 먹먹한 울림이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스스로가 기특하게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외면했던 삶에 얽혀 있던 인간 관계와 그들의 사랑이었다는 걸 영화는 깨닫게 한다.
우리는 마음속에 자신만의 아쿠아리움을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 상처받기 싫어서, 무언가를 잃은 빈자리가 너무 커서, 두꺼운 유리벽을 세우고 아늑한 고립을 택하곤 한다. 하지만 그 고립 속에서 혼자 걸어 나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화는 벽을 쌓고 거부했던 관계가 오히려 넓은 바다로 나가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내가 등 돌리고 싶은, 불편한 관계 속에 숨은 퍼즐은 어떤 문을 여는 열쇠일까,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