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남매를 키우신 엄마는 10년 넘도록 새벽부터 일어나 밥을 하고 도시락을 싸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지금 나는 오래전 나의 엄마처럼 아침마다 남편과 아들의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그때의 엄마 생각이 부쩍 많아진다.
오빠, 언니들, 나하고 동생 모두 학교 다닐 때는 아마도 엄마의 아침은 거의 전쟁과도 같았으리라. 아침밥을 먹이는 것도 힘든 일이었을 텐데 5개 도시락까지 준비하려면 도대체 밥과 반찬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야 했을 지 생각만해도 숨이 벅차다. 한참 먹성이 좋은 아이들 다섯을 먹이려면 쌀도 가마니로, 과일도 박스, 김치도 한 접(100포기), 그렇게 어마어마한 양을 준비해야 했으니 그 시절 엄마는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다. “돌아서면 한 가득 하던 음식이 다 없어지니 정말이지 먹는 입이 무섭다.”
물론 그때는 외식이라 해봐야 자장면 먹는 정도가 다였지만 그 아이들 배불리 먹이려면 집에서 손수 만들어 먹어야 하셨기에 우리집은 항상 뭐든 만들면 한 솥, 계란도 한판, 만두를 만들어도 빙 둘러앉아 커다란 그릇에 가득 담긴 속을 퍼 가며 함께 만들었다. 그래서 엄마의 살림은 컸고 그릇도 큰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것이 엄마의 삶이고 가정의 모습 이려니 생각했다. 그 안에서 우리 오 남매는 잘먹고 잘 자라 모두 자기들의 가정을 꾸렸고 엄마, 아빠가 되어 자식들을 또 먹이고 살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요즘 같은 세상에 내가 도시락을 15년째 싸고 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해본 일이다. 미국 생활하면 자유로이 햄버거 사먹고 샌드위치와 커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나의 커다란 착각이었다. 20년전 미국으로 온 날부터 나는 가족들의 먹거리를 집에서 모두 해결해야 했다. 남편의 회사는 집에서 오분 거리라 점심때가 되면 집으로 밥을 먹으러 왔고 아이들은 낯선 학교에 적응해야 해서 먹는 거라도 입에 맞는 것을 먹여야 할 것 같아 런치박스라고 도시락을 준비해서 학교로 보냈다.
그렇게 시작한 도시락 싸기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나오는 점심을 먹게 된 후 몇 년간은 멈출 수 있었는데 몽고메리로 이사 오면서 남편의 회사가 한시간 거리로 늘어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점심 도시락을 다시 싸야만 하게 되었다. 15년째 나는 아침마다 남편의 도시락을 준비한다. 도시락이란 것이 쌀 때와 먹을 때는 온도 차이가 있어 제대로 맛있게 먹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그래서 메뉴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마치 매일의 숙제를 떠 안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많다. 고맙게도 남편은 음식 투정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도시락 싸는 일을 언제쯤 이나 그만 하게 될까? 요즘 들어 자꾸 꾀가 나고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회사에 배달 오는 식당음식을 먹으면 안될까? 남편에게 물어보면 대충 집에 있는 것 간단히 해도 좋으니 싸 달라고 한다. 식당 음식은 몇 번 먹으면 질리고 맛도 그렇고 너무 허술해 보여 먹고 싶지 않단다. 이 남자 아주 배짱이 좋은 사람이거나 눈치가 없는 거 같다. 그래도 매일 성실히 일하는 남편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해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은 그야말로 일상이 되어 그런대로 하고 있는 중인데 아뿔싸 큰 아들이 취직을 했는데 집에서 다니게 되어 그 녀석까지 도시락을 싸 달라고 한다.
이거 큰일이다. 생각도 못해본 일들이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3개월 수습 기간 동안만 일단 도시락을 싸 달라고 한다. 정직원이 되면 도시락 비용이 회사에서 나오니 그때는 다른 사람들처럼 식당에서 배달해 오는 도시락을 먹어 보겠노라 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 아침마다 2개의 도시락을 싸고 있다. 힘차게 밖으로 나가 맡은 바 일 잘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그래도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을 먹는 동안은 가족의 응원과 위로가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하는 나는 오늘도 그들이 좋아하는 메뉴들로 사랑담아 내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