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한다. 친구–.때론 가족보다 더 가깝고 소중하며 모든 걸 털어놓고 이야기하며 충고를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관계다. 사귀는 벗을 보면 그를 알 수 있다는 말이 헛된 말이 결코 아니다. 공자는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향기를 맡지 못하니 그 향기에 동화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만큼 친구와 그 사이의 정이 우리 인생살이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리라.
세한도(歲寒圖)는 조선 후기의 학자 추사 김정희가 그린 문인화로 국보 180호로 지정되어 있다. 세한도라는 이름은 추운 겨울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라는 논어 구절에서 따왔다. 세한도를 보면 겨울 혹한 속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서 있고 나무들 사이에 오두막집 한 채가 있다. 배경도 없고, 화려한 색채도 없이 황량한 데다 으스스한 한기마저 느껴진다. 추사는 왜 이리도 쓸쓸한 그림을 그린 걸까. 추사는 안동 김씨와의 권력투쟁에 밀려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평생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았던 그에게 제주도에서의 유배 생활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끊임없이 풍토병에 시달렸고, 음식과 의복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을 거듭했다. 추사가 받은 형벌은 유배형 중에서도 가장 무겁다고 알려진 위리안치형이었다. 집을 가시 울타리로 둘러싸 집 바깥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울타리 안쪽 작은 집 안만이 김정희에게 허락된 공간의 전부였다. 국내를 넘어 해외를 넘나들었던 그에게 그 공간은 너무나 좁고 답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한 줄기 빛이 있었다. 바로 제자 이상적이었다. 역관이었던 이상적은 중국에 갈 때마다 최신 서적을 구해서 스승에게 보냈으며 청나라의 최신 학문과 동향을 전해주었다. 대역죄인으로 몰려 귀양 간 그에게 지극 정성으로 책을 보냈던 이상적, 김정희는 그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담아 붓을 들었다. 1년 중 가장 추운 날에 세한(歲寒)을 그린 그림, 세한도! 김정희는 가장 추운 날을 그려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 것이다.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은 이전이라고 해서 더 잘하지도 않았고 이후라고 해서 더 못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게 없었지만 이후의 그대는 성인의 칭찬을 받을만하지 않겠는가?”스승의 그림과 글을 받은 이상적도 눈물을 흘리며 스승에게 답장을 쓴다. “어찌 이렇게 분에 넘친 칭찬을 하셨으며 감개가 절절하셨단 말입니까?…걱정스러운 것은 그림을 구경한 사람들이 제가 정말로 속물에서 벗어나 권세와 이권의 밖에서 초연하다고 생각할까 하는 것입니다.”추운 날이 되고 나서야 느낀 따뜻한 정. 추사 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진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 그림은 추운 그림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그림일지도 모른다.
“만 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운 때에도/‘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탔던 배 꺼지는 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시의 지은이는 함석헌 선생이다. 평생을 올곧고 바르게 부끄럼 없이 살아온 선생도 한 동안은 세상의 일과 오해에 얽혀 곤란한 처지에 빠진 시절이 있었다 한다. 그 때 선생은 스스로 집안에 관을 하나 들여놓고 그 속에 들어가 자신이 죽은 사람이거니 생각하고 심각하게 자성의 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 때 이런 시를 생각했지 싶다. 어쨌든 보통의 시가 아니다. 바늘로 가슴을 찌르듯 충격을 주는 시이다. 함석헌에게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니 내게 ‘그 사람’은 있기나 한 걸까. 시인의 물음처럼 나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하고. 실은 내가 누군가에게 ‘그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는가를 자문해본다.
사람들은 ‘친구’라는 말을 즐겨하지만, 친구가 될 줄은 모른다. 나도 그렇다. 친구 사귀기가 참 조심스럽다. 흔히“친구는 한 사람이면 족하고, 두 사람이면 많고, 세 사람이면 불가능하다”고 한다. 참된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참된 친구를 갖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동시에 깨우쳐주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들면 얕은 관계보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더 좋다. 아는 척 가진 척 잘난 척‘ 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과 서로를 이해하는 관대함이 우정을 오래 지속시키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