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들어서며 나무들이 서서히 옷을 갈아입는 정경에 김영랑 시인의 ‘오메, 단풍 들것네’ 가 내 마음을 흔들어서 집을 떠나며 흥분했었다. 작은딸네가 초대한 바닷가 휴양지는 남편이 가보고 싶었던 조지아주 남부에 있는 제킬 아일랜드(Jekyll Island)여서 기대가 컸다.
이곳에 도착하자 단풍은 잊고 아름다운 정경에 취해서 빗줄기에 따라온 찬기운을 맞았다. 줄기차게 해변에 곤두박질하던 거친 파도의 야생미와 밀물과 썰물, 바다의 다른 모습이 좋았다. 2살과 5살, 두 사내녀석이 넓은 호텔 로비를 놀이터로 만들자 나도 그들과 숨바꼭질하고 많은 그림들 앞에서 받은 인상을 나누니 마치 보물 찾기 하듯 재밌었다. 전세기 올드타운은 굵은 붓으로 그은 듯 멋지게 휘어진 떡갈나무들의 구부정 휘어진 두터운 덩치 나뭇가지에 치렁치렁 감겨서 바람에 춤을 추던 스페니쉬 모스를 배경으로 상큼하고 아기자기 했다. 어느 먼 곳의 마술가가 창조한 세상인 다양한 식물들이 무성한 오솔길을 걷는 재미 또한 솔솔했다.
거북이 병원에서 바다 거북이들 소개와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을 만났다. 보트에 부딪치고 차에 치이거나 혹은 야생동물의 공격을 받은 후 이곳에 실려온 크고 작은 거북이들은 소중한 생명체였다. 병실인 둥글고 큰 물탱크마다 이름과 입원한 날짜에 어떻게 다쳤는지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재밌는 이름들만 아니라 손주의 이름을 가진 거북이가 소개되자 아이는 당황했다. 흔한 이름이 아닌데 누군가 다친 거북이에게 ‘생명의 나무’라는 의미를 줬다.
드리프트우드 비치(Driftwood Beach)는 독특한 곳이었다. 오랜 세월 바다가 해안가 숲을 침식하며 삼킨 나무들이 벌거벗은 존재로, 마치 거대한 모래사장 화폭에 전시된 조각품처럼, 하나도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바닷물에 반쯤 잠긴 휜 나뭇가지 사이로 신나게 노는 아이들이 가지에 부딪혀 다칠까, 바닷물에 휩쓸려갈까 보호하려던 딸과 사위와 달리 나는 비틀린 나무가지들 사이를 자유롭게 훨훨 날라 다녔다. 기이한 모습 보다 오히려 천연의 창작품으로 태양과 바다와 바람에 전신을 맡기고 사라지길 거부하는 강인한 자세로 버티고 있는 나무들의 형상에 감탄하며 삶과 죽음 지나에 영원이 있음을 느꼈다.
어둑한 새벽에 일출을 보려고 해변가로 나섰다. 파도가 한참 멀리 떠난 모래밭은 그림자 하나 없었다. 좀 쌀쌀한 기온에 두터운 자켓에 후드까지 쓰고 해변을 걸으면서 조금씩 밝아오는 주위에 마음이 가뿐했다. 길게 이어진 해변은 한적했고 갈매기들조차 깨어나지 않았다. 내 삶은 단순했고,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평온을 얻었다. 내 발자국이 조금씩 눈에 띄일 적에 아이들의 소란에 돌아보니 딸네 가족이 반바지에 얇은 자켓만 걸친 가뿐한 옷차림으로 다가왔다.
지난 이틀 수영장에서 놀며 입술이 파랗게 변해도 풀장을 떠나려 하지 않던 5살 손주는 겁도 없이 바닷물에 들어섰다. 대서양 물이 걸프만처럼 따스하지 않아서 나는 물속에 발 담그는 것을 꺼렸지만 아이는 파도가 밀려오면 풀쩍풀쩍 뛰며 좋아했다. 수평선 멀리서 오렌지 빛이 짙게 펼쳐지다가 붉은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을 적에는 황금빛 물길이 아이에게 닿자 아이는 행복에 겨운 탄성을 쏟았다. 아이의 해맑은 얼굴에 퍼진 황홀한 표정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면서 내가 그런 기쁨에 빠졌던 적이 언제 였었나? 물었다.
환하게 밝은 세상에서 환하게 밝은 추억을 찾아 내 기억창고를 뒤졌다. 어렸을 적과 청소년 적의 기뻤던 단편들에 어른이 되어서, 특히 엄마가 되어서 가졌던 기쁨의 순간들이 내 아이의 아이를 보면서 더욱 벅차게 다가왔다. 붉은 태양을 둘러싼 구름의 형상이 마치 과거의 순간 순간을 상기시켜 주는 듯 여러 모습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자연이 내 삶을 풍요롭게 다독여준 과정에서 고달팠던 고뇌의 시간들은 소멸되고 없었다.
그리고 배를 타고 조지아 시인 시드니 레니어의 이름을 가진 다리를 지나가 돌고래들을 만나고 모래사장에 몸체는 묻혔지만 깃대는 꼿꼿이 하늘을 향한 새우잡이배 메리엔의 스토리와 가까이 있던 독수리에 어른아이 모두 천진한 동심이 됐다. 더불어 맛있는 생선과 새우요리를 즐기며 매일 모래언덕을 끼고 걸으면서 파도 소리에 취했다. 하지만 10마일 긴 해변을 걷고 싶은 충동은 욕심으로 남았다. 19세기부터 부자들의 휴양지로 자리잡은 환경에서 마음이 부자인 나도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은 제킬 아일랜드의 멋과 맛을 맘껏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