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뉴욕 북부에 있는 메이플릿지 브루더호프 공동체를 방문했다. 나의 가족은 그곳에 두 번째 방문이었고, 여행을 함께 한 4명의 교우들은 처음 방문이었다. 2000년에 책 <브루더호프의 아이들>을 읽고, 그 공동체는 아이들 교육의 이상향으로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2023년, 그 이상향을 실제로 목격하게 되었다. 장애가 있는 나의 아들은 브루더호프를 경험한 이후로 거기서 일하며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이번 기회에 연세 많으신 교우들은 공동체에 사는 노인들의 삶을 엿보고 싶은 것 같았다. 우리는 브루더호프를 방문하기 전에 브루더호프와 관련된 여러 책들 중 한 권씩을 읽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책은 브루더호프를 설립한 에버하르트 아놀드가 쓴 <공동체로 사는 이유>였다. 얇고 작은 판형의 책이지만 신앙적 영감을 주는 글들이 알차게 들어 있다. 에버하르트(1883년~1935년)는 어릴 적부터 사회적 불평등에 반대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친구로 지냈다. 에버하르트가 열여섯 살 때, 목사인 삼촌과 구세군의 어떤 대표자가 만나서 친밀하게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된다. 그 대화 속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흘러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하며, 그는 내적 변화를 겪는다. 그런 후, 에버하르트는 중산층의 사교 생활을 거부하지만 브레슬라우대학교의 교회사 교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에버하르트를 이해하지 못한다.
에버하르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은 공동체로 존재하기에 공동체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공동체의 길은 현실과 인간 개성으로 인해 위험과 고난이 따른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 길을 걷을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하나님은 현실을 극복하는 사랑의 힘을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은 이 현실 보다 강한 분이기 때문이다. 에버하르트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님과 초기 그리스도교를 믿고 고백한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역사 속에서 짧게 존재했지만 그 영향력은 여러 공동체에 미치고 있다. 공동체는 사유재산을 가지지 않고 모든 것을 공유한다. 누구도 공동체의 소유가 아닌 어떤 것을 따로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공동체가 소유한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1920년 독일 자네츠에서 시작한 브루더호프는 올해로 창립 105주년을 맞이했다. 브루더호프는 그동안 나치의 탄압이나 공동체 내부 분열 같은 ‘치명적인 위험과 괴로운 고난의 길’을 걸어오면서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려 노력해 왔다. 그들은 공동체 초기부터 있었던 ‘어린이들의 공동체, 농장 일, 정원 일, 건축 일, 수공예, 출판, 방문객과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일’을 지금까지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체를 체험하며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음에 감사했다. 교우들은 한결같이 꿈 속에 있다가 나온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한인 박성훈 님이 쓴 <이상한 나라 하나님 나라> 제목처럼 정말 이상한 나라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신선한 충격은 반나절도 안 지나 찾아온다고도 표현했다. 미국 안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다른 나라가 있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점심 공동 식사할 때의 일이다. 그들은 어느 공동체 멤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노래였는데 누군가 노래를 시작하자 은은한 화음이 이루어졌다. 노랫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천국의 소리가 있다면 이와 같을 거라는 소감에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교우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연세가 많으시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모습은 역시 인상적이었다. 돌보는 것 같지 않게 돌보는 일상의 모습.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자연스러움 속에 세밀한 보살핌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주님의 사랑이 아니면 그런 모습일 수 없다고 우리는 얘기했다.
브루더호프는 미국, 독일, 영국 등 여러 나라에 3000명 정도의 멤버를 가지고 있다. 한국 영월에서도 2022년 브루더호프가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미국 브루더호프의 방문객 대부분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공동체에서는 이런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브루더호프가 하나님을 믿으며 공동체로 살아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진정한 섬김, 나눔, 화해, 평화를 이루려는 그들의 삶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스며드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