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전, 일요일 아침이었다. 뜰에서 낙엽을 긁어 모으는 남편 주위에서 나는 커피잔을 들고 새들의 향연을 즐겼다. 딸은 유명 한인 베이커리 찾아가서 다양한 종류의 패스트리를 두 박스에 남아와서 식탁에 펼쳤고 나는 여러 과일을 모은 큰 접시를 옆에 푸짐하게 놓았다. 모처럼 찾아오는 지인과 아침을 같이 먹는 선데이 브런치 준비였다.
아프가니스탄은 국토 대부분이 고산지대인 험난한 자연환경 만큼 역사적 상흔을 가진 나라이다. 오랫동안 내란으로 불안정했던 나라가 영국과의 전쟁을 거친 후 다시 10년에 걸친 소련과의 전쟁을 버틴 이유도 아프간의 이 열악하고 메마른 환경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9.11 사태 이후, 2001년부터 미국과 국제안보지원군의 침략으로 많은 희생을 감수했지만 견뎌냈고 미군이 완전히 철수한 2021년 후,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여전히 분쟁과 가난이 공존하는, 도전 받는 나라이다.
딸은 2009년 카불의 미국대사관에 잠시 근무했다. 그곳에서 활약하던 아프간 출신 미국인들을 여럿 만나서 친구가 됐다. 특히 아프간 미국인 라지아 잔 (Razia Jan)과 와즈마 오스만 (Wazhmah Osman)과는 특별한 사이가 됐다. 실크로드의 길목이었던 그곳에서 가꾸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본 딸과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진 세상을 산 조상과 부모의 한을 가슴에 품은 라지아와 와즈마, 미국과 아프간 두 나라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활약하는 여인들의 인연을 알게 된 내 마음은 흐뭇했다. 그후 아프가니스탄은 우리 모녀의 삶에 섞였다.
나는 라지아가 2008년에 설립한 ‘자불리 교육센터’의 여학생을 스폰서 한다. 올 7월에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지핀 교육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여전히 타오른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태풍의 눈 같은 불안한 정치환경, 그래도 꿈을 꾸는 어린 여자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떠올리면 희망이 있다. 현재 필라델피아에 사는 와즈마는 템플대학 조교수이며 영화제작자인데 회의 차 워싱턴DC로 온 길에 딸을 찾아왔다. 직접 만나니 마치 전설속에서 튀어나온 실체 같았다. 우리는 편안하게 둘러앉아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녀는 소련과 아프간의 전쟁 중 전투사로 싸웠던 아버지로 미국으로 망명 온 초창기의 난민가족이다. 아프간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미국의 학계와 예술계에 자신의 자리를 만들었다. 그녀는 또한 아프간 상황을 산 자신의 가족사를 다큐 영화 ‘Postcards from Tora Bora’ 제작해서 아프간을 소개했다.
그녀의 스토리는 어느 이민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민 1세는 생활에 열심이었고 그 자손들은 여린 날개를 퍼덕이다 성장해서 사회에 기여한다. 그녀를 통해서 생생한 아프가니스탄의 현실과 미국에 난민으로 도착한 아프간 사람들의 현실을 알게 됐다. 또한 그녀가 근래에 망명 온 아프간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많이 달라서 처음 도착한 이민자들과 서로 잘 융화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야기였다. 내가 아프간 출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 ‘연을 쫓는 아이’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고 소개받은 아프간의 문화를 이야기하자 그녀는 한국의 모찌를 맛있게 먹으면서 자신도 김치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녀를 만난 며칠 후, 11월 26일에 워싱턴 DC에서 주방위군 총격사건 뉴스와 다음날 20세 여군의 사망소식에 아연질색했다. 주방위군을 총격한 사람이 아프간 출신 난민이라는 발표에 더욱 놀랐다. 총격자가 CIA에서 훈련 받은 특수부대 출신으로 2021년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수할 적에 미국에 망명 온 최근 이민자란 이유로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인에 대한 비자발급을 중단하고 동시에 모든 망명신청에 대한 결정을 보류하며 해외 난민들의 망명 정책에 큰 제동을 걸었다.
현재 와즈마의 심정이 어떠할 지 생각하는데 내 기억 저쪽에서 2007년의 한 사건이 떠올랐다. 버지니아 공대에서 한인 이민자 청년이 교수들과 학생 32명을 사살하고 17명을 부상시킨 끔찍했던 총기난사는 미국사회에 정신질환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그때 한국계로 당황하고 참담했던 나에게 한 지인이 다정한 전화로 위로를 주었다. 태어난 나라를 떠나와 선택하고 사는 나라에서 이민자들이 겪는 고충은 일반 시민들과 다르다.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 이주 이유와 시간대는 달라도 미국사회에 공헌하며 열심히 사는데 차별을 받아야 하나? 내 항의는 힘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