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23
삼면이 강으로 둘러 쌓인 영월땅 청령포에 새로운 유배자가 온다. 수염이 허연 정승 대가가 오리라고 기대했던 촌장 엄흥도는 솜털이 남아 있는 아이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다. 윗마을 촌장은 귀향이 풀려 한양으로 간 영의정 덕에 마을이 배곯는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왕위에서 쫒겨나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새파란 아이라니, 엄흥도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어린 왕은 죽을 생각만 한다. 그의 죽음은 마을 사람들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기에 엄흥도의 인내는 한계에 달한다. 그때 호랑이가 나타난다. 무기력하던 어린 왕은 날렵히 활을 날린다. 마을 사람들은 그 모습에서 왕의 호칭도 빼앗겨 노산군으로 불리는 젊은 왕의 당당함을 보게 된다.
처음 이 영화에 대해 들은 건 미국인들도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었다. 한국의 정서나 역사도 모르는 미국인들이, 더구나 자막으로 보면서도 울었다니 그 감동이 궁금했다. 이미 관람수도 1400만을 넘겼다는 소식에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커져만 갔다. 마침내 상영 소식이 들렸다.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손수건을 챙기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는 노산군의 귀향을 오히려 반가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엄흥도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어린 왕을 죽음으로 몰고간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끼니를 간신히 이어가는 하층민들에게는 밥줄을 이어주는 노다지처럼 보인 것이다. 이런 시선의 차이는 쌀밥을 마다하는 노산군과 먹을 것이 최우선인 마을 사람들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든다. 하지만 노산군이 마다한 밥상에는 우리 땅에서 나는 푸성귀와 산의 열매로 정성을 다한 마을 사람들의 사랑이 가득했고 엄흥도의 익살 속에는 삶을 녹여 낸 한의 웃음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자신의 비극에만 갇혀 있던 17세의 어린 왕은 귀천이나 이념이 없는 세상으로 걸어 나와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함께 한다. 자신의 처지가 어떻든 그들 모두는 질곡된 삶을 함께 살아내야 하는 이땅의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연대감은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노산군에게 따뜻한 위로를 준다. 하지만 노산군과 마을 사람들의 애정이 깊어갈수록, 화면을 가득 채우는 어린 왕의 웃음이 봄처럼 화사할수록,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더 빨리 다가오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려 왔다.
영화는 어느덧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엄흥도의 아들을 인질로 노산군을 협박하는 무뢰한 한명회,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왕의 위엄을 포기하기를 권하는 엄흥도, 그 모든 것을 알기에 발길을 돌려야 하는 노산군의 저릿한 눈빛, 그 눈빛에는 목숨을 건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승산없는 싸움이란 걸 알면서도 그 길을 마다하지 않은 노산군. 부귀영화를 버리고 목숨을 바친 금성대군. 아들의 목숨앞에서도 어린 왕을 택한 엄흥도. 영화관의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사의 물결은 도도히 흘러가고 세조는 노산군의 시체를 거두면 삼족을 멸한다는 명을 내린다. 하지만 엄흥도는 노산군을 품에 안고 그를 애도한다.
영화는 끝났지만 훌쩍이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축축해진 손수건을 접으며 스크린으로 올라오는 자막을 읽었다. 후에 노산군은 단종의 휘호를 얻었고 엄흥도는 충의공이라는 시호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시선이 멈췄다. 엄흥도가 정말 존재했었다고?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는 흥미를 위해 픽션을 가미한다. 엄흥도라는 인물 역시 픽션이겠거니 했는데 그는 실존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금성대군 사건은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일까…하는 궁금증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종의 묘는 장릉으로 불리우며 현재 영월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에는 단종에게 충성을 바친 268인의 비가 있고 엄흥도의 비각도 있다고 한다. 금성대군 역시 장릉에 안치되었다. 그들의 죽음 이후 마을 사람들은 세조의 맥을 이은 왕권의 서슬 퍼런 눈을 피해 가며 단종을 기리고 금성대군을 위해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570년이 지난 현재, 영월과 순흥에는 영화 상영이후 단종과 금성대군의 안녕을 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흔히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승자가 아닌 패자들의 노래가 한창이다. 영화는 묻고 있다. 당신도 의로운 패자의 길을 걸을 수 있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