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날이라고 아들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서 영화관에 갔다. 막 새로 개봉한 영화 제목이 ‘Materialists’였다. 영화의 배경은 뉴욕 맨해튼이며, 중상류층 젊은 백인들의 이야기다. 영화의 주인공은 루시라는 여자다. 루시는 한때 배우를 꿈꾸다가 중매쟁이가 되어 뉴욕 맨해튼의 중매회사에서 성공적인 중매쟁이로 활동하게 된다.
영화는 성공적인 중매쟁이인 루시가 자신의 배우자를 고르는 과정에서, 전부터 사귀던 남자 친구와 새로 사귄 부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가난한 남자 친구에게 돌아가는 이야기다. 루시는 자신이 중매해서 성사시킨 커플의 결혼식장에 갔다가, 신랑의 형 해리를 만난다. 부자인 해리는 루시를 좋아해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온다. 해리와 루시가 함께 고급 음식점에 갔을 때, 루시는 과거 배우 지망생 시절 사귀었던 남자 친구 존을 우연히 만난다. 존은 여전히 루시를 좋아하고 있으며, 아직도 배우를 꿈꾸며 음식 배달을 부업으로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루시가 중매한 소피라는 여성이 루시에게 달려와 항의한다. 루시가 소개해 준 마크라는 남자가 소피에게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소피는 루시가 상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소개했다며 강하게 항의한다. 이 사건 이후, 루시는 자신이 중매할 때 물질적인 조건만 고려하고, 순수한 사랑은 배제해 왔다는 점을 반성하기 시작한다.
중매 대상자들의 직업, 연봉, 맨해튼 고급 주택 소유 여부, 여성들의 고급 브랜드 옷과 장신구, 남자의 키 등 물질적이고 외적인 조건들이 루시의 중매 기준이었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런 물질적인 요소들이 순수한 사랑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해리의 요청으로 루시는 해리와 아이슬란드 여행을 준비하며 자신이 사는 집을 잠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다. 그러던 어느 날, 해리의 침대 위에서 자던 루시는 잠결에 깨어 그의 몸 일부가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을 본다. 그런데 몸 여기저기에 수술 자국이 보인다. 호기심이 생긴 루시는 그 자국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중, 해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내 키가 5피트 6인치여서 6피트가 안 되니 문제라면, 수술해서 늘리면 된다”던 말이었다.
결혼 조건으로 키도 문제가 된다는 영화 속 이야기를 보니, 실제로 내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내 키가 몇 센티미터만 더 컸더라면, 내 운명이 달라졌을 거야.” 그는 S대 출신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친구였지만, 어쩌면 중매를 통한 첫 데이트에서 작은 키 때문에 거절당했을지도 모른다.
루시는 자신이 해리에게 끌리는 이유가 그의 부유함 때문임을 분명히 느낀다. 해리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국 그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해리와의 여행 계획으로 인해 집을 빌려줘 머물 곳이 없어진 루시는 존의 작은 아파트로 간다. 두 사람은 센트럴파크로 피크닉을 나간다. 존은 들꽃으로 만든 반지를 루시의 손가락에 끼워준다. 공원에서 점심을 먹던 중 존은 루시에게 청혼하고, 루시는 키스로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루시와 존을 비롯한 여러 커플들이 시청에서 결혼 허가증을 받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배우들의 빠른 영어가 이해하기 어려워 혼란스럽긴 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에서는 어딘가 동양적이고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옛날에는 남자가 바람 피우다 결국 조강지처에게 돌아가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이 영화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부자인 남자와 가난하지만 따뜻하고 인내심 있는 옛 남자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결국 처음 사랑에게 돌아오는 이야기가 그려져 있어 반가웠다.
영화를 보고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아들이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몰랐는데, 그게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더 놀라운 건 그 감독이 젊은 한국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셀린 송(Celine Song, 본명 송하영)이라는 37세의 한국 여성이다. 12살에 캐나다로 이민 가서, 캐나다 퀸스대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뉴욕 콜롬비아대에서 연극·영화 석사과정을 마쳤다. 아버지는 영화감독, 어머니는 디자이너인 예술가 집안에서 자랐다.
셀린 송의 사진을 보니 전형적인 한국 여성의 체구로 비교적 작은 편이었다. Materialists 이전에도 희곡을 써서 연극 무대에 올렸고, 영화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감독해 발표했다. 영어 원어민보다도 더 능숙한 언어 구사력과 감각을 가진 셀린 송은 연극과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새로운 별로, 미국과 세계 영화 산업 속에서 앞으로 큰 활약이 기대된다. 작가 한강이 젊은 여성으로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것처럼, 셀린 송도 순수한 한국 여성의 이미지로 세계 무대에서 더 많은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