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칸쿤에 여행 갔을 때였다. 바닷가 모래밭을 맨발로 걸었다. 따뜻하고 시원하며 푹신한 해변의 모래밭을 맨발로 밟으니 발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고, 내 발가락 사이사이로 모래가 간지럽게 스칠 때, 발가락들이 시원하고 좋다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 그곳의 해변의 모래밭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걸었다.
발가락 사이로 스치는 따뜻한 해변의 모래가 왜 이렇게 기분 좋을까? 계속 걸으면서 생각해 보니 분명한 사실을 발견했다. 내 발가락들이 양말과 신발에 갇혀 너무 오랜 세월 혹사당하다가, 오랜만에 해방되어 모래를 밟으며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스치는 감각이 새로웠던 것이다. 6·25 전쟁 전, 초등학생 시절에는 맨발로 강변에서 많이 놀았지만, 그 이후 서울에 살 때는 발가락에 무좀이 생기고, 미국에 와서는 바쁘게 사는 동안 발과 발가락은 신발 속에서 긴 세월동안 무사당하고 혹사당하다가, 늙어서 모처럼 모래밭을 걸으니 발가락들이 시원하고 좋다고 함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칸쿤 해변의 모래밭을 걷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고 힐링이 된다는 것이 분명해서, “그래, 집에 돌아가면 나무 상자를 만들어 이런 모래를 넣고 텔레비전을 볼 때 모래상자 속을 제자리걸음으로 걸어 보자!”라는 생각을 했다.
전문가들은 발가락이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신체 부위이기 때문에, 심장 기능의 이상을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는 곳이 바로 발가락이라고 한다. 현대생활의 스트레스, 영양 불균형, 운동 부족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심장의 이상을 가져오는데, 거기에 더해 발가락을 좁은 신발 속에 밀어 넣어 모세혈관을 통한 혈류를 방해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연히 유명한 여류 발레리나의 발가락 사진을 봤다. 와, 놀랍게도 발레리나의 발가락들은 길고 탄탄했다. 내 발가락과 비교하면 훨씬 길고 튼실해 보였다. 그들은 발가락 끝으로 서서 온몸의 체중을 견디며, 유연한 몸놀림으로 우아한 춤을 출 수 있고, 일찍부터 발가락을 많이 사용해 그렇게 길고 튼튼하게 자랐을 것이다. 체육관에서 병든 노인의 발가락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그는 지팡이에 의지해 겨우 박 걸음을 천천히 옮겼는데, 그의 발가락들은 작게 쪼그라들고 뒤틀려 슬리퍼 바닥에서 들떠 있었다.
발가락의 기능은 몸의 중심을 잡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발가락은 몸의 균형을 유지하고, 걷거나 서 있을 때 지면을 잡아 넘어지지 않게 한다. 발가락은 우리가 걸을 때 앞으로 밀어주는 추진력을 제공한다. 서 있을 때에도 발가락들은 발바닥을 넓혀 체중을 분산시켜 한곳에 부담이 집중되지 않게 한다. 또한 발가락은 지면의 질감이나 기울기를 감지해 뇌가 조정하도록 돕는다. 발가락이 있기에 우리는 다양한 방향으로 이동하거나 방향 전환을 쉽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발가락들을 바쁘게 산다고 신발 속에만 가두어 두었다가, 모처럼 푹신한 모래밭을 밟으니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집에 와서 모래 나무상자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물거품이 되었다. 한국에서 황토 맨발 걷기 운동이 일어나고, 나도 ‘부탄파크’ 야구장의 흙 길을 몇 번 맨발로 걸어 보았다. 황토길을 걸어서 얻는 건강 효과에 대한 주장들을 나는 잘 느낄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내 발가락들이 신발 감옥에서 해방되어 본연의 구실을 하고, 건강을 되찾는 느낌이 좋았다.
샤워를 하고 몸을 말릴 때, 나는 발가락을 주물러 준다. 그때 올리브 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려 마사지를 하니 미끄럽고 부드럽게 마사지가 된다. 마사지를 하다 보니 발가락들이 포동포동해지는 느낌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발 마사지는 다음과 같은 건강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말초혈관이 확장되어 혈류가 좋아지고, 림프의 흐름도 개선된다. 발의 피로감이나 붓기가 줄어들고, 말초신경이 모여 있는 부위를 마사지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주 마사지를 하면 발가락이 더 유연해지고 감각이 예민해져 균형 감각 향상, 보행 안정성 증가, 노인 낙상 예방 등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내 몸이면서도 관심 받지 못하고 신발 속에 갇혀 중노동에 혹사당하던 내 발가락들이, 칸쿤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모래밭을 걸을 때 좋다고 아우성 친 그 감각 덕분에 나는 발가락 마사지를 시작했다. 올리브 유를 한 방울 떨어트리고 마사지를 하니 부드럽다. 올리브 유는 발에 생기는 병의 예방과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는 보고도 있다. 아침 스트레칭을 할 때도 손가락을 발가락 사이에 끼우고 움츠리는 운동을 잠깐씩 한다. 발가락들의 혈액순환과 몸의 균형 감각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