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 단풍이 찬란히 빛나는 청명한 가을날, 닥터 Y가 자신의 별장 보러 가자고 10시 반에 내가 사는 콘도로 왔다. 나는 그의 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사이버트럭은 스스로 85번 하이웨이에 진입해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차가 자율주행으로 달리는 사이, 그는 존 덴버의 옛 노래 ‘Country Roads, Take Me Home’을 틀었다. 우리 둘은 목청 높여 노래를 따라 불렀다. “Almost heaven, West Virginia… Country roads, take me home/To the place I belong…” 노래를 부르니, 그의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그가 사는 스와니에서 북쪽으로 45마일 떨어진 곳에 10에이커의 땅을 샀으니 같이 가보자고 처음 말한 것은 봄이었다. 봄에 본 그 땅은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원시림이었고, 작은 도랑 주변의 대나무숲에서 대나무 순을 한 아름 따왔었다. 집을 세울 터를 닦기 위해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을 하나씩 베고 뿌리까지 뽑아 터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의 땅을 처음 볼 때, 나는 문득 내가 좋아하는 영국 시인 예이츠의 시가 떠올랐다.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거기 나무가지 엮고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을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벌 윙윙대는 숲속에 나 혼자 살리.”
그의 부인은 이미 6–7년째 회복 불능의 중병을 앓고 계시고, 요양보호사 두 분을 고용해 매일 교대로 보살핀다. 밤에는 그 자신이 아내를 돌본다. 기저귀를 갈고, 변비가 오면 대변 돕는 것도 본인이다. 그래도 요양보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다. 부인을 요양병원에 보내면 편하지만, 60년을 같이 살아온 사랑하는 아내를 끝까지 손수 보살피겠다고 한다.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아버지, 어머니 특히, 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한다. 그가 의과대학을 갈 때 아버지는 경상도 시골 논과 밭을 팔아 학비를 댔다고 한다. 그가 산 10에이커 땅이 아버지가 판 논과 밭보다 적어 땅을 더 사려고 해도 땅을 안 판다고 한다. 더 서운한 것은 아버지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점이다. 그는 큰 바위 두 개를 사다가 마당에 세우고 아버지와 어머니 기념비를 만든다고 한다.
그의 땅에 들어서자 쇠로 만든 차문을 열고, 좁은 흙길을 차가 나무 사이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울창한 숲속에 넓은 마당이 만들어져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사다 놓은 나무집이 서 있고, 옆에는 화장실도 있다. 넓게 닦아 놓은 마당에는 이동용 전기 트랙터와 탱크 같은 굴착기가 있다. 그 굴착기로 그동안 나무를 베어 치우고 터를 닦아 자갈과 모래를 깔아 마당을 넓혔다.
“김 교수, 이것 좀 봐요.” 그는 집 처마 끝에 연결된 큰 플라스틱 통 밑의 수도꼭지를 트니 물이 졸졸 흘러나왔다. 집 지붕 끝에 물받이 거터를 달고, 그 끝에서 빗물이 흘러 큰 플라스틱 통으로 모이게 만든 것이다. 화장실엔 양변기를 사다 놓았지만 아직 설치는 하지 않은 상태였다. 집 안에는 고급 이동식 침대를 들여놓았고, 선반에는 여러 기구가 정리되어 있었으며, 방 구석에는 발전기도 있었다. 다음 프로젝트는 태양광 패널 설치라고 했다.
마당 가운데 화단에는 이름 모를 꽃과 파·무 등 채소가 심겨 있고, 그는 물을 주고 나서는 비닐덮개로 화단을 덮어주었다. 그의 땅 가장자리에 철망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염소와 닭도 기를 계획이라고 했다. 닭은 수탉 한 마리에 암탉 5마리면 수탉이 암탉들을 못살게 굴기 때문에, 수탉 한 마리에 암탉 8~9마리는 되어야 균형이 맞는다고 웃으며 설명했다. 앵무새, 기러기, 매 같은 맹금류와 두루미는 일부일처로 평생 사는데 닭은 일부다처라고 했다.
가을 햇살이 따스한 마당 한가운데 서서 태양을 향해 눈을 감으니 묘한 평화가 찾아왔다. 마당을 둘러싼 큰 나무들은 세상과 모든 소리를 완전히 차단해 인적도, 소음도, 마음속 잡념도 모두 사라졌다.
닥터 Y의 별장을 나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오니 아내가 식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아내를 보는 순간, 문득 닥터 Y의 말이 떠올라 나는 아내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올렸다. “건강하셔서 고맙습니다.”
아내는 갑작스러운 행동이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점심 자리에서 닥터 Y가 “집에 가면 부인에게 큰절 하세요. 남편이 병 수발 안 들고 살게 해 줘서 고맙다고 큰절 하세요!” 하고 말한 이야기를 전해주니 아내는 그제야 웃었다.
“당신도 나한테 큰절해야죠. 내가 아프면 당신도 고생할 거니까. 우리 모두 큰 병 안 든 것, 지금 여기까지 잘 살아온 것 하나님께 감사해야 해요.” 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