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요즘도 뛰어?” 다른 주에 사는 둘째 아들에게서 카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어, 일주일에 3~4번. 왜?” 남편이 대답했다. 그러자 아들이 어떤 달리기 대회 안내문을 보내며 다시 물었다. “땡스 아침에 5마일 런 할래?” “그래 하자~” 남편은 바로 결정했다.
둘째 아들, 윤은 추수감사절에 우리 집에 와서 여러 날 머물다 돌아간다. 지난해 추수감사절에 윤은 운동복과 러닝화를 챙겨 왔다. 하루에 한 번씩 동네를 돌고, 폰차트레인 호숫가를 달리고, 시티 파크에 가서 달렸다. 쉬는 날이면 밥 먹고 뒹굴 대던 윤이 아니어서 아주 신선했다. 윤은 직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달리기를 한다. 그리고 그가 사는 지역에서 열리는 다양한 달리기 대회에 종종 참여한다. 달리기 대회에서 완주하는 쾌감이 있는지 즐기는 것 같다. 올해는 뉴올리언스 경주에 참여하기 위해 윤과 남편은 함께 달리기 연습을 했다.
윤이 찾아낸 달리기 대회는 118th NOAC TURKEY DAY RACE 2025. 이 대회는1907년에 설립된 뉴올리언스 애슬레틱 클럽이 주최한다. 비마라톤 대회 중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지속적으로 열리는 경주 중 하나다. 추수감사절에 열리고 여러 세대가 참여한다. 대회 수익금은 루이지애나 주에서 척추 갈림증(Spina Bifida of Louisiana)을 가진 개인과 가족을 위해 사용한다.
대회는 명절 아침 8시 30분에 시작한다. 시티 파크에 있는 경기장 근처에서 출발하여 5마일을 달려 경기장 안에서 끝나는 경기다. 참가자가 3,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한 시간 전에 행사장에 도착했다. 벌써 주차 공간마다 자동차들이 빼곡하고 거리마다 사람들로 활기찼다. 기온이 떨어져 쌀쌀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점점 출발선 근처로 모여들었다. 나는 남편이 조금 걱정되었다. 남편은 평상시 3.5마일 정도를 달린다. 5마일은 몇 번 달리지 않았다. 남편은 익숙한 흐름을 깨고 새로운 흐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익숙한 편안함에 저항하며 끝까지 달릴 힘을 잘 분배하길 바랐다. 나는 남편에게 힘들다 싶으면 걸어서 천천히 오라는 말로 내 속마음을 전했다. 아들이 같이 달리니까 그나마 맘이 놓였다.
나는 첫째 아들, 산과 부자가 벗어 놓은 옷가지를 챙겨 경기장 안으로 이동했다. 결승선이 잘 보이는 관중석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로 약속했다. 산과 슬슬 관중석 가까이로 다가갔다. 어머! 벌써 선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광판은 겨우 24분이 지나고 있었다. 어떻게 달렸기에… 남녀노소, 유모차를 미는 엄마 등 선수들이 줄지어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기장에는 캐스터의 힘찬 멘트가 둥둥 떠다녔다. 관중들은 선수에게 짧은 환호를 보낼 뿐 차분하게 경기를 즐겼다.
나는 경기장 입구에 눈길을 고정했다. 산에게도 아빠와 동생이 들어오나 보라고 말해 두었다. 여러 사람과 섞여 있어도 내 식구들 모습은 얼른 분별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우리 가족의 역사적 순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부자는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윤은 나를 발견하고는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남편은 3마일까지는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 3마일을 지나고 나니 호흡이 안정되고 리듬감이 생겼다고 했다. 육체의 한계를 경험하는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남편의 유쾌감이 내게도 전해졌다. 남편은 아들이 있어서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윤은 달리면서 땀과 콧물까지 흘리는 아빠를 살폈나 보다. 든든한 아들이다.
추수감사절에 달리기라니, 정말 감사가 절로 나오는 조합이다. 달릴 수 있는 건강, 응원하는 가족과 이웃이 있으니 말이다. 어디 그 뿐인가. 함께 달리거나 걷는 사람들이 있고, 오래된 나무와 땅과 하늘의 응원도 있다. 부자가 달리기한 소식을 들은 몇몇 이웃은 내년에는 그들도 뛰고 싶다고 그랬다. 그들은 평상시에 몸을 단련하는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므로 이런 경주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산은 자기도 달리고 싶다고 말했다. 오래 걷는 것도 힘들어 하는 아들이 뛰고 싶다니 뭐라고 대답하기가 난감했다. 걷기에 참여하는 방법도 있으나 산에게 5마일은 너무 길다. 그래도 그 달리기 코스를 산과 함께 한번 걸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