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앨라배마 주립극장 ASF (Alabama Shakespeare Festival) 무대에 놀랍도록 훌륭한 두 작품이 올랐다. 리먼 삼부작 (The Lehman Trilogy) 과 잊을 수 없는 (Unforgettable). 이 두 작품은 어수선하던 내 마음을 활짝 열어줬다. 특히 이 두 작품은 내가 현재 뿌리 내리고 사는 몽고메리에 살았던 사람들의 스토리라 나에게 의미가 깊었다.
‘리먼 삼부작’은 이탈리아 작가이며 극작가인 Stefano Massini 가 2008년 9월15일, 뉴욕에서 일어난 ‘리먼 브라더스 금융그룹’ 파산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왔던 사태를 보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의문을 갖고 파헤쳐 쓴 서사시다. 그것을 각색한 것을 2018년 런던 피카딜리 극장에서 초연한 후 2019년 뉴욕에서 공연되며 미국에 소개됐다. 토니상을 다섯이나 받은 이 스토리의 시작이 바로 몽고메리 였다.
1884년, 가방을 하나 들고 독일에서 신대륙 미국, 뉴욕에 도착한 헨리 리먼은 몽고메리로 와서 다운타운에 일반 상점을 열었다. 그의 가게가 번창하자 독일에서 그의 동생 둘이 이주해 와서 세 형제가 ‘리먼 브라더스’ 사업체를 키웠다. 더 높이 더 멀리 날려던 형제들은 활동지를 뉴욕으로 옮겼다. 중간 거래상을 거쳐 금융분야로 바꾸며 리먼 가족은 강력한 정신력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기반을 다졌다. 엄청난 야망과 정체성, 이민과 다음 세대로 넘어가며 변해가는 미국화, 경제관념이 특출한 리먼 가족들 간의 복잡한 관계와 적응, 그 과정에서 얻은 것과 잃어버리는 것들, 결국 그 가족의 아메리칸 드림은 파산으로 끝났다. 하지만 나는 유대인들의 성공은 그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룬 결과임을 안다.
한 가족사만 아니라 동시에 미국사를 보여준 중견 배우 세 남자, 그들의 열연은 3시간의 공연을 순간으로 만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을 좋아했고 대학때는 극단 ‘가교’의 허드렛일에 봉사했듯이 무대에 선 배우들의 열정을 보면 흥분하는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했다. 이 작품을 유대계 친구에게 이야기 해줬더니 보고 온 친구도 멋진 공연을 봤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이번 주말, 나는 다시 ASF로 가서 Unforgettable을 봤다. 한때 사람들의 마음에 따스함을 줬던 재즈 가수이며 피아니스트 Nat King Cole (1919-1965)의 노래에 푹 빠졌다. 몽고메리에서 태어난 콜은 4살때 침례교 목사인 아버지의 부임지, 시카고로 이사가 성장했다. 교회 피아노 반주자였던 어머니는 어린 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고 음악을 소개했다. 덕분에 재즈 피아니스토로 시작해서 가수가 된 그는 많은 히트곡으로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앨라배마 버밍햄 출신의 가수 John Mark McGaha가 콜의 히트곡을 부르며 60년 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그를 데려왔다.
맥가하는 주옥 같은 노래를 부르며 콜의 인생사를, 그 당시의 사회상을 소개했다. 특히 1958년에 NBC 방송으로 전국에 방영된 ‘더 냇 킹 콜 쇼’는 대성공이었지만 흑인이었던 그에게 후원자가 없어서 중단된 것은 인종 차별의 현실이었다. 흑인들의 인권운동이 한창 이었던 그때 콜은 자신의 노래로 항거한 사실을 듣고 ‘Smile’ 노래가 극장안을 꽉 채우자 의자에 깊숙이 앉았던 나는 미국의 치욕스런 인종차별 희생자들의 고통스런 삶에 희망을 심어준 노래 가사에 집중했다.
연극장에서 만난 많은 지인들, 우리 부부처럼 이민자가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나이든 사람들이다. 노래는 좋아했지만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고초에 냉정하게 외면했던 사회에서 성장한 그들은 라디오로 흘러나왔을 적에 즐겨 듣던 과거의 아름다운 노래에 잠겨 있었다. 콜의 노래를 듣고 성장한 친구는 의자에 앉아 춤을 췄다고 했다. 내 귀에도 익숙한, Mona Lisa, The Christmas Song, Route 66, When I fall in love, Autumn Leaves노래들에 나도 출렁거렸다. 특히 맥가하가 육군중령으로 퇴직한 후 사회봉사에 기여한 그의 아버지에게 바치며 부른 ‘Unforgettable’ 은 감동이었다.
콜을 관객들에게 데려온 가수 맥가하는 현재 내슈빌에 살고 있으며 전국을 다니며 공연한다. 재밌게도 그의 스토리는 콜의 스토리와 맞물려 있고 무대 위에서 콜의 영혼이 맥가하와 일심동체가 된 착각도 들었다. 맥가하가 마지막 부른 노래의 가사, 희망을 주는 파랑새가 봄에 찾아오길 바랬을 적에 나는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맞다. 내가 기다리는 것이 바로 파랑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