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숲속을 걸었다 잎맥 사이를 걷다 보면 숨소리가 닿는다 뜨거운 한철을 보낸 잎새들 진액은 다 빠져 푸르렀던 생의 무늬 누렇게 떠 퍼덕이고 있다 오랜 기도처럼 간신히 잡고 있던 숨의 흔적 곁눈질 한번 못하고 쭉정이가 되어 버린 꿈 스스로 지우며 늘 아래를 보고 있다 귓볼이 뜨거워지도록 녹슨 달팽이관을 세우며 가지 하나의 흔들림에도 찬바람이 서리는 늙은 어머니 늦가을의 숲은 그녀의 등처럼 야위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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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 단풍이 찬란히 빛나는 청명한 가을날, 닥터 Y가 자신의 별장 보러 가자고 10시 반에 내가 사는 콘도로 왔다. 나는 그의 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사이버트럭은 스스로 85번 하이웨이에 진입해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차가 자율주행으로 달리는 사이, 그는 존 덴버의 옛 노래 ‘Country Roads, Take Me Home’을 틀었다. 우리 둘은 목청 높여 노래를 따라 불렀다. “Almost heaven, West Virginia… Country roads, take me home/To the place I belong…” 노래를 부르니,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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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뉴올리언스에서 동북쪽으로 뻗은 낯선 길로 들어섰다. P는 I-10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 사용하던 옛길이라고 알려주었다. 한적한 도로였다. 얼마 지나 좁고 녹슨 다리를 건넜다. 곧이어 나무 방파제가 있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나무 방파제는 낡았고 갓길에는 쓰레기가 너저분했다. 보통은 이곳에 차를 세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중에 지도를 살펴보니 그곳은 물이 폰차트레인 호수에서 보른 호수로 흘러가는 길목이었다. 낚시꾼에게는 특별한 곳이었다. P부부는 해 뜰 무렵과 해 질 무렵에 물고기가 잘 잡힌다고 이구동성으로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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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19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달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우리가 앞면만 보고 진실을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순간, 나머지 절반의 진실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영화는 시작된다. 넷플릭스에서 2025년에 개봉 된 따끈한 신작인 이 영화는 풍자와 패러디가 혼합된 블랙코미디물이다. 우리가 보는 뉴스는 진실일까 아니면 그저 보기 좋게 편집된 ‘좋은 뉴스’일 뿐일까? 영화의 제목이 주는 굿뉴스라는 뉘앙스에서 우리는 왠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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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 때에는 꼭 동네를 산책하는 것이 오랜 습관이다. 오늘도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우연히 워커에 의지해 걷고 있는 바람개비 할머니를 또 만났다. 할머니의 느릿한 걸음에 비해 워커에 달린 바람개비는 씽씽 돌아가는 것이 재미있어서 내가 붙여드린 별명이다. “어머니, 바람개비는 오늘도 쌩쌩 참 신나게 도네요.” 할머니는 연한 미소를 지었다.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다보니 할머니와 나는 어느새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워커에 늘 달고 다니는 바람개비는 버지니아를 떠날 때 교회 어린이들이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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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 놓은 쓰봉 속주머니에 십만원이 있다”/병원에 입원하자마자 무슨 큰 비밀이라도 일러 주듯이/엄마는 누나에게 말했다/속곳 깊숙이 감춰 놓은 빳빳한 엄마 재산 십만원/만원은 손주들 오면 주고 싶었고/만원은 누나 반찬값 없을 때 내놓고 싶었고/나머지는 약값 모자랄 때 쓰려 했던/엄마 전 재산 십만 원...“ 권대웅 시인의 ‘쓰봉 속 십만 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에 초연할 수는 없다. 사내의 삶은 쉽지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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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이웃 간 쪽지 사건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웃집 문에 붙여진 “앞집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조금 기다렸다가 나와주세요”라는 요청이었다.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이 쪽지는 언뜻 보면 개인적인 요청 같지만, 사실은 우리 시대의 독특한 사회적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전 같았으면 가볍게 주고받았을 인사나 작은 대화는 점차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대면 접촉 대신 비대면 방식이 기본 선택이 된 장면은 이제 흔한 일상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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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80년대의 세대는 극심한 경제적 곤궁과 정치적인 격변속에서 혼란의 시기를 직접 보고, 겪고, 견디며 이시간 까지 달려 왔다. 그시절엔 생활 전반에 걸쳐 절약과 검소를 실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오늘날 번영하는 한국경제의 발판을 마련한 세대였다고 자부하고 싶다. 가난했던 그 시절, 부모 세대의 몸에 밴 절약 정신을 우리세대도 그대로 보고 배웠다. 일상용품에서부터 주식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철저히 아끼고 절약하며 지냈던 그 시절 생활상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돌아 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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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 되자 골목 찻길에서도 낙엽이 바람에 실려 춤을 춘다. 앞서 달리는 차가 일으킨 돌개바람에, 길 위에 나뒹굴던 잎들이 다시 공중으로 솟구친다. 아씨마켓점에 들렀다가 메도우 처치 로드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던 길, 풀밭 한 귀퉁이가 스치듯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풀들이 꼬리를 흔드는 듯 살랑거린다. “어, 저거 강아지풀 아니야!” 잊고 지내던 익숙한 존재를 오랜만에 만난 기쁨이 저절로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오래전에 헤어졌던 강아지가 주인을 알아보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충청도 산골에서 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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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45) 앨라배마 주에서 가장 높은 산은 체아하(Cheaha) 산이다. 몽고메리에서 차로 3시간 가까이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산으로 해발 약 735미터이다. 다른 주에 있는 높고 웅장한 산들에 비하면 동산처럼 나지막한 산이지만, 산이 귀한 미국 동남부에서는 그나마 등산다운 등산을 할 수 있는 산이다. 이 산 볼드락(Bald Rock)에 앉아 아래를 바라보면 여태껏 보지 못했던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산에 오르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자연 속에서 마음의 안식과 활력을 얻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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