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42)
그림책 <행복을 나르는 버스>의 영어 원제는
책의 첫 장으로 돌아와, 교회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소년, 시제이와 우산을 들고 뒤따라오는 할머니를 만난다. 옷이 축축하게 젖은 시제이는 불만스럽게 할머니에게 말한다. “비가 왜 이렇게 많이 와요?” 이제, 이야기는 시제이의 질문과 할머니의 대답으로 이어진다. “우린 자동차가 왜 없어요?, 왜 우린 항상 예배가 끝나면 거기에 가요?, 저 아저씨는 왜 앞을 보지 못할까요?, 나도 저 형들처럼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고 싶어요. 왜 여기는 맨날 이렇게 지저분해요?” 시제이는 할머니와 버스를 타고 마지막 정거장으로 가면서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을 할머니에게 묻고, 할머니는 시제이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무가 목이 말라서 비가 많이 온단다. 차가 없어도 우리에겐 친절하게 목적지로 데려다줄 기사 아저씨가 있잖아. 그곳으로 가면, 너는 다른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지. 꼭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은 귀로 세상을 본단다. 음악을 들려주는 기계가 없어도, 바로 앞에서 노래를 불러 줄 사람이 있다면 아름다운 음악의 마법에 빠질 수 있어. 때로는 아름다운 것은 지저분한 데서 더 잘 보이기도 한단다.”
마지막 정거장에 내린 할머니와 시제이는 늘 해오던 봉사활동을 위해 무료급식소로 향한다.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할머니를 따르며, 시제이는 깨진 채로 불을 밝히는 낡은 가로등, 길 잃은 고양이의 그림자, 무료급식소에 줄 서 있는 낯익은 얼굴들을 보고 말한다. “할머니, 여기 오니까 좋아요.” 시제이의 이 말에 할머니는 웃지 않고, 시제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마지막 정거장에서 시제이는 책을 읽고 할머니는 말없이 뜨개질을 한다.
이 책은 칼데콧 상과 뉴베리 상을 동시에 수상한 유일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미국 도서관 협회에서 우수한 그림책에 수여하는 칼데콧 상과 문학적 가치가 높은 작품에 주는 뉴베리 상은 평가 대상이 그림과 글이라는 다른 점 때문인지 한 작품이 두 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은, 이 작품 이전엔 없었다. 이 책은 또한 ‘크레타 스콧 킹 상’도 수상했다. 이 상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아내인 크레타 스콧 킹의 이름을 딴 상으로 흑인의 인종차별이나 인권문제 등 그들의 삶을 투사한 아동/청소년 문학에 수여하는 상이다.
일요일, 버스를 타고 도시 변두리에 있는 무료 급식소로 향하는 시제이의 하루는 가난한 도시인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에서 가족끼리 자가용을 타고 가는 삶이 아니라, 함께 버스를 타고 가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돕고, 내가 가진 재능을 나누는 삶은 함께하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제이의 불평불만처럼 세상은 부조리하고 불공평하다. 하지만 할머니의 가르침처럼 더러움으로 가려진 세상이기에 아름다움이 더 돋보일 수 있다.
나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대화가 흑인 말씨라고 미국 아이들이 알려주었다. 그래서 더 친근하고 재미있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은 신나지만, 무서운 사람이 많아서 버스를 타는 것은 위험하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쓰레기 가득한 동네로 어린 시제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한다. 어른보다 더 현실적인 미국 아이들의 이런 조언을 듣고 보니, “할머니, 여기가 좋아요.”라는 시제이 말에 할머니가 웃지 않았던 이유가 보인다. 마지막 정거장은 그대로 좋은 곳이 아니다. 넘쳐나는 쓰레기를 치우고 푸른 나무를 심고 가꾸어 가야할 숙제가 남겨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