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멈추는 순간 늙기 시작한다”라고 주장하는 분이 있다. 한국의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다. 그는 올해 92세인데도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128번째 책인 <평생 현역으로 건강하게 사는 법>을 출간했다.
오래전, 이웃에 사시는 은퇴한 의사분이 한국에 갔을 때 강원도 홍천에서 일주일을 보냈다고 했다. 이시형 박사가 만든 힐리언스 선마을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왔는데 매우 좋았다고 했다. 미국에서 바쁘게 일에 쫓기며 살던 습관을 완전히 잊고,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보는 경험이 좋았다고 했다. 숲길을 걸으며 숲속의 식물들과 동물들과 하나가 되고,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바쁜 일상에서 숨겨졌던 자신을 되찾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황토찜질방도 좋았고, 이시형 박사의 강연도 큰 힐링이 되었다고 했다.
자연의 순리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숲속의 생물들과 교감하며 그들과 하나가 된 자신은 어떤 자신일까? 나도 한국에 가면 힐리언스 선마을에 가보고 싶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그 폐허 위에서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자”는 구호를 외치며, 국가 주도의 산업화와 농촌 근대화를 거쳐 수출 지향적인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이루고, 선진 경제 진입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불과 70여 년 만에 선진 경제국이 되는 과정 속에서 많은 국민이 갈피를 잃고 병들었다. 특히 나와 같은 한국 노인 세대는 격동의 삶을 살아오면서 나쁜 생활 버릇도 많이 생기고, 고쳐야 할 고정관념과 정신적 질병도 많다. 그런 점에서 같은 세대를 살아온 이시형 같은 정신과 의사가 그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 늘 존경스러웠다.
그의 주장 중 내게 관심을 끄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은퇴하고 늙었어도 계속 무언가 일거리를 찾아 하라.”
‘멈추면 늙는다’는 말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은퇴했고, 일 안 해도 먹고살 만한데, 그래도 지금 뭔가를 하라는 충고 아닐까. 젊어서는 내 자신과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 일했다면, 이제는 늙지 않기 위해서 혹은 천천히 건강하게 늙기 위해서, 내 이웃을 위해 아주 작은 무언가를 하라는 충고일 것이다. 일본 노인들은 은퇴 후에도 도로 청소나 자원봉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노인 인구가 많아지면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정책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잘 아는 분의 말이 생각난다. “하루에 좋은 일 한 가지를 하기로 했는데, 오늘은 길거리에 떨어진 휴지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 남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일 같은 작은 일 한 가지라도 하자.”
‘소식다동(小食多動)’의 삶을 살아라.
이시형 박사는 자신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생활을 실천하기 때문에, 92세가 되어도 여전히 건강하고 활동적이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1960~90년대에는 먹는 즐거움에 맛있고 좋은 것을 많이 먹는 버릇이 있는 분들이 내 주변에도 많았다. 사장님들이나 의사분들 중에도 배고프던 시절의 생활 버릇 때문에 많이 먹는 습관이 생겨 당뇨병에 걸렸다는 분도 있다.
그는 걸으면 건강하다고 하며 걷기를 권장한다. 과하지 않게, 무리하지 말고, 자연과 접하며 마음을 편히 가지고 걸으라고 한다. 그는 체육관에 간 적도 없고, 특수한 운동이나 무술을 익힌 적도 없다고 한다. 다만 평소 생활 틈틈이 부지런히 움직였다고 한다.
그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 박사’로도 불렸다. 격변을 거쳐 살아온 한국 노인들 중에는 우울증이 많고,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생활 습관을 고쳐 행복 호르몬을 얻는 방법을 소개했다. 걷기, 자연과의 교감, 명상, 그리고 신명 나게 노는 법 등을 통해 세로토닌을 얻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신명 나는 놀이의 예로 중·고등학교와 육·해·공군에서 북을 치는 그룹 활동이 왕성했다고 한다. 그렇게 신나게 놀면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고 유대감이 생기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인들이 무서워하는 치매에 대해서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치매 예방 방법으로 머리를 쓰라”고 권장한다. 부모가 치매가 있었다면 나도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머리를 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글 읽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친구 만나기, 게임이나 퍼즐 풀기, 악기나 외국어,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등은 모두 머리를 쓰는 일이다.
이시형 박사 자신이 우리 노년 세대가 겪은 격변의 생활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에, 그분의 전문적인 지혜가 우리 노년들이 가진 나쁜 생활 습관을 고치는 데 매우 적절하다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