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판 위에 몇 안 되는 물건을 올려놓고, 뭔가를 사주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굵게 패인 이마의 주름을 따라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내 눈을 맞추려 올려든 이마는 더 깊은 골을 만들었고, 누런 이 사이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구경하던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넸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한낮의 태양 아래, 그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구슬땀이 반짝였다. 그 땀방울 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뭉클함을 느꼈다. 옆에 앉은 어린 소녀의 이마에도 땀에 젖은 잔머리가 붙어 있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빛은 맑은 물처럼 투명했다. 손녀일까, 두 사람의 닮은 이마가 햇살아래 나란히 빛났다.
인도네시아 여행길에 만났던 그 할아버지와 어린 소녀의 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에 선명하다. 여행을 함께했던 동료 화가가 그 장면을 수채화로 정밀하게 그려냈을 때, 다시금 살아 있는 듯한 감동이 되살아났다. 그림 속 할아버지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거칠게 갈라져 있었고, 깊게 파인 주름 사이로 세월의 흔적이 어둡게 스며 있었다. 오래된 상처가 굳은살과 함께 박힌 손으로 물건을 내밀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표정은 뜨거운 태양을 녹여낸 듯 따뜻했다. 그때부터 내 시선은 고운 얼굴보다 세월이 남긴 흔적에 머물렀다. 매끈한 손보다는 거칠고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나눔의 흔적이 베인 손. 조각 같은 얼굴보다 세월을 수놓은 주름진 얼굴에서 더 큰 매력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평소 사람들의 몸짓이나 표정을 관심 있게 본다. 공항이나 공공장소에서 기다리는 동안, 노트에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때로는 그저 바라보며 마음속에 담아두기도 한다. 화가의 눈은 사소한 움직임과 표정의 미묘한 떨림 하나에도 마음을 기울이는 연습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주름이나 땀방울 같은 작은 흔적이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은, 그런 습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동안 나는 마더 테레사의 주름진 이마에 깊이 매혹되었다. 스케치를 하며 묵상했던 그 시간은 지금도 내게 감동으로 남아 있다. 거칠고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은 손, 나눔의 흔적이 새겨진 손을 모아 이마를 숙인 채 기도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외형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이야기를 읽으려 애썼다. 우리가 감추고 싶어 하는 주름은 사실 한 생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언어였다. 고목의 나이테처럼, 주름은 묵묵히 살아온 세월의 기록이었다.
기도하는 이마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숙연한 마음이 든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고된 하루를 내려놓으며 이마를 숙여 두 손을 모을 때, 그 모습은 진실한 고백이었다. 그 겸손한 자세는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다가왔다.
이제 내 얼굴에도 깊어 가는 주름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엔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거울 속 선명한 주름이 눈에 띄면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없다고 믿으면서도, 손으로 이마를 쓸어내리며 괜스레 부정하려 든다. ‘주름은 인생의 기록이라더니,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는 땀을 잘 흘리지 않는다. 한여름에 운동을 해도 이마를 타고 굴러 내릴 만큼의 땀은 흐르지 않는다. 찜질방도 좋아하지 않으니 억지로 흘려본 적도 거의 없다. 아마도 열정적인 노동을 해 본 적이 드물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어쩌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느낄 때면, 그것만으로도 뿌듯하다. 무언가를 열심히 한 보상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남의 이마에 패인 주름 사이로 흐르는 한낮의 땀방울은 내게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남의 흔적은 아름답게 바라보면서도, 정작 내 삶의 흔적 앞에서는 눈을 돌리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주름까지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깊고 선명한 주름이 내 이마에 새겨질 때, 그 안에 나의 땀과 기도, 그리고 누군가에게 건넨 작은 웃음들이 함께 스며 있기를 바란다. 그 주름이 나의 한낮을 증명해 줄, 가장 빛나는 이마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