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 일정과 책임을 완벽하게 챙기려 했던 나는 마치 작은 그릇에 무언가를 채우려 전전긍긍하는 사람 같았다. 나는 어디에 놓아도 쓸모 있고 흠집 하나 없는, 누구나 좋아하는 매끄러운 그릇이 되려 애쓰며 살아온 듯하다. 하지만 흠집을 감추려 노력할수록 삶은 더 고단해졌고, 그 무게는 나이가 들수록 힘에 부쳤다. 이번 여행을 앞두고 유독 마음의 짐이 컸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정 있는 여성들이 함께 모여 훌쩍 여행을 떠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오래전부터 마음은 먹었으나 선뜻 나서지 못한 것도 그 까닭이었다. 그림을 배우는 학생과 선생의 인연으로 만나 몇 해를 지내온 사이였지만, 여행지에서 며칠 밤낮을 함께한다는 사실은 솔직히 부담으로 다가왔다. 젊음의 패기와 모험심이 넘치던 시절에는 앞뒤 생각 없이 부딪치며 상처를 주고받기도 했으나, 이제는 각자의 모양새가 단단히 굳어진 어른들이었다. 그만큼 서로에게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여행지에서의 작은 마찰이 관계를 틀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이번 결정은 더욱 무거웠다.
나는 새로운 곳도 좋지만 익숙한 곳을 다시 찾는 여행도 즐긴다. LA에 살던 시절, 손님들이 올 때마다 게티 뮤지엄과 LA 미술관 같은 이름난 곳들을 수없이 다녔다. 사람들은 “같은 장소를 또 가면 무슨 재미가 있느냐”고 묻기도 했지만, 나는 갈 때마다 늘 새로운 결을 발견하곤 했다. 그런 나였기에, 낯선 이들과 떠나는 여행조차 개의치 않던 내가 이번에는 왜 이토록 망설였을까 스스로 의아하기도 했다.
내가 먼저 제안했던 LA 아트쇼와 미술관 투어였다. 하지만 막상 건강 문제와 여러 걱정이 겹치자 자신감마저 사라졌다. 종일 서서 그림을 보는 일은 체력적으로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동반자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나를 짓누를 때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본전조차 찾지 못할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결국 용기를 내어 항공권을 끊고 일정을 짰다. 평소에 나는 “여행은 예고되지 않은 낯선 만남의 시간”이라 믿으며 대충 떠나는 편이었다. 반면 남편은 A4 용지에 지도와 자료를 꼼꼼히 챙겨 책자를 만드는 정밀한 스타일이다. 그런 남편에게 늘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해왔건만,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나 역시 몇 장이나 일정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내 그릇 이상의 것을 담아내려 했던 과욕, 그리고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이 내 발길을 무겁게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사람에게는 각자의 그릇이 있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의 용도가 다르듯 우리 마음의 그릇도 저마다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어떤 이는 이해의 국그릇이 넓고, 어떤 이는 배려의 찬그릇이 깊을 것이다. 살아오며 이 차이를 미리 인정하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면 삶이 조금은 더 수월했을까.
여행은 이러한 나의 뒤늦은 염려를 비웃듯 걱정과는 달리 풍성하고 깊었다. 체할 만큼 많은 그림을 보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 어린아이들 같았다. 늘 보던 일몰과 일출조차 마치 새해 첫날의 해맞이처럼 감동으로 다가와 마음을 새롭게 물들였다. 우리는 각자의 그릇만큼을 내어놓으며, 낯선 두려움마저 서로에게 기대어 웃을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함께한 이들의 마음이었다. 제일 연장자가 먼저 양보의 미덕을 보이자,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한 발씩 물러섰다. 그분은 세월을 통과하며 스스로를 비워냈고, 그 그릇은 비워진 자리만큼 넉넉한 여유를 지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내 그릇에 무엇을 채워 대접할까 고민했던 여행 전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번 여행은 누구를 위한 봉사가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이제는 내 그릇을 무언가로 가득 채우려고 욕심내기보다, 타인의 배려를 넉넉히 담을 수 있도록 비우고 닦는 일에 마음을 쓰고 싶다. 비운 만큼 넓어지는 것이 비단 그릇뿐만이 아님을, 이번 여행의 길 위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