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30분 전,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동네 지붕 위로 퍼진다. 분주하던 성당 안에도 그 소리의 무게가 스며들며 고요한 침묵이 흐른다. 미사 오 분 전, 다시 종이 울린다. 자리에 앉은 신자들은 그 울림에 마음을 내려놓고 가다듬는다. 곧 시작될 미사를 기다리며, 종소리가 주는 안정감과 이끄는 힘 안에서 조용히 준비한다.
몇 년간 울지 않던 종이 얼마 전 성당 수리를 모두 마치고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이 ‘성당의 종소리가 다시 들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는 것도 들었다. 나는 그동안 종소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일상을 살아왔다. 막상 다시 울리기 전까지는 그 공백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했다. 지붕 가장 높은 곳에 달린 종을 그저 성당의 상징처럼 바라볼 뿐, 그 소리에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들려온 종소리에 가슴 깊숙이 스며드는 감동과 함께 잔잔한 울림이 일었다.
내가 다니는 성당은 다운타운에 자리한, 1910년 이탈리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오래된 건물이다. 현지인 신자 수가 줄어들며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놓였을 때, 모빌 교구에서 우리 한인 공동체에 내어준 곳이다. 한인 신자 수가 많지 않았지만, 그 당시 우리는 독립된 공간을 간절히 원했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타국에서, 신앙생활만큼은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새로운 공간은 우리에게 기쁨이자 도전이었다. 수리할 곳은 많고, 적은 인원으로 유지하기에는 버거웠지만, ‘내 집’ 같은 편안함이 있어 무엇보다 좋았다.
나는 한인 성당이 자리 잡은 몇 해 뒤에 이곳에 왔다. 처음 성당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오랜 시간이 묻어 있는 성물들이었다. 특히 벽에 걸린 ‘십자가의 길’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색이 갈라지고 떨어져 있어 안타까웠다. 신부님께서 그것을 새롭게 색칠해 줄 수 있겠냐고 물으셨을 때, 자신은 없었지만 두말 않고 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온 마음으로 색을 벗겨내고 새롭게 입히며 작업을 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타주로 떠났다. 몇 년 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그 성물을 찾아갔다. 말끔히 복원되어 벽에 걸려있는 모습을 보자 가슴 깊이 감동이 밀려왔다. 그 안에 내 작은 손길이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어느 날, 현지인 가족들이 성당을 찾아왔다. 지긋이 나이 든 한 어르신은 자신이 결혼식을 올렸던 장소이며, 자녀들이 세례를 받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의 얼굴엔 그리움과 감회가 어린 벅찬 표정이 그려졌다. 설명하는 목소리에는 성당을 향한 애정과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가끔 삐걱거리는 낡은 의자 소리가 거슬리고, 침침한 카펫 분위기가 싫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들이 낡은 것들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채 눈가를 적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졌다.
오래전 누군가는 이 자리에서 간절히 기도하던 곳이고, 누군가는 첫 세례를 받았으며, 또 다른 이는 결혼식을 올리고, 어떤 이는 장례미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낡은 문짝 하나, 오래된 의자 하나도 새롭게 보였다.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사연, 기도가 겹겹이 쌓인 장소라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성당 주위의 오래된 집에서도 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규모 있는 목조건물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집들과 우거진 나무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성당 위의 종을 올려다본다. 주일이면 퍼지는 그 소리는 마을의 지붕 위에 머물며, 누군가의 기억 속에 울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나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마음을 모은다. 그 소리는 단순히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아니다. 이곳에서 이어져 온 수많은 기도와 발걸음이 남아 있는 공간- 그 안에서 나도 한 부분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나의 기도도, 나의 발걸음도 이곳을 찾는 누군가의 마음에 종소리처럼 잔잔한 울림으로 남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