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17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Buy Now (Shopping Conspiracy)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소비라는 행위에 얼마나 많은 전략과 의도가 숨어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소비를 하는 걸까? 같은 용도의 물건을 몇 개씩 갖고 있는 걸까? 멀쩡한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의식있는 소비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다큐는 ‘사샤’ 라는 AI 나래이터가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처음엔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현대 소비문화의 이면을 한층 흥미롭게 바라보게 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사샤는 애플, 아디다스, 아마존같이 알려진 대기업의 판매 전략이 무엇인지 파헤친다. 그들의 의도는 단하나, 무조건 물건을 사게 만들어 자신들의 수익을 최대치로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도는 소비자를 위한다는 슬로건과 지구 환경을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교묘히 포장되어 왔다.
아마존은 ‘원글릭 쇼핑’이라는 문구로 소비자의 편리성을 강조했지만 손쉬운 쇼핑은 필요치 않은 구매로 이어질 것이라는 그들의 숨겨진 의도는 적중했다. 아디다스는 판매부진의 위기를 스포츠문화와 셀럽들의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판매전략으로 극복했다. 사람들은 셀럽들의 문화를 자신도 향유한다는 만족감으로 신상품을 구매했다. 애플은 화려한 런칭 행사를 통해 완벽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신상품을 공개하며 기존의 기기를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도록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판매회사들은 더 많이 팔기 위해 더 많이 생산해야 했고 온라인 쇼핑의 성장은 지구를 거대한 쓰레기 장으로 만들었다. 눈으로 확인되는 그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1시간마다 250만짝의 신발이, 1분에 19만벌의 옷이, 플라스틱은 1초마다 12만톤씩 생산되고 있다. 휴대폰은 1시간마다 68,000대씩 만들어지고 하루에만 1300만대가 버려진다. 영화는 우리가 버리는 것은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나는 영상으로 보여준다. 하늘에서 수백만 켤레의 신발들이 떨어지고 건물 꼭대기까지 차오른 물건들이 분수처럼 흘러내린다. 거리위로 쌓인 물건들이 순식간에 푸른 하늘을 가리고 도시가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해가는 그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놀라운 것은 소비자들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땡스기빙, 크리스마스, 이스터, 할로윈, 발렌타인 데이, 노동절, 어버이날 등등 수많은 이벤트마다 쏟아져 나온 물건들은 재고를 만든다. 기업들은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세일이나 기부가 아닌 폐기를 결정한다. 수많은 물건들이 박스도 뜯지 않은 채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폐기물들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자 기업들은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 재활용을 선언했다.
하지만 제품 설명에 버젓이 ‘재활용 가능’ 이라는 문구가 있어도 실제로 재활용되는 것들은 극히 드물다는 것이 밝혀졌다.
전자기기의 유해 폐기물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업체들은 의도적으로 전자기기의 수명을 2내지 3년으로 만든다. 고장난 것들을 수리할 수 없도록 부품 생산을 중단하기도 하고 아예 분해가 되지 않아 수리조차 할 수 없는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20세기초 전구의 수명을 2500시간에서 1000시간으로 의도적으로 줄인 ‘피버스 카르텔’ 이후 많은 회사들의 ‘전략적 진부화’ 는 오늘날까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수리해서 쓸 수 있는 물건들은 버려지고 새로운 물건들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예전에는 일년에 2번정도 신상품을 개발했던 기업들이 현재는 수천개의 신상품을 이벤트마다 쏟아내고 있다. 구매를 유혹하는 광고는 소비자들의 욕망을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결국 사람들의 집 선반에는 같은 용도의 물건들이 가득 쌓인다.
이런 거대한 소비 구조에서 일개 개인이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다큐는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보여준다. 내부 고발을 감수한 기업 임원, 재활용의 실태를 추적한 탐사자, 전자기기의 수리 권리를 요구하며 법정에 나선 시민들이 있음을 알려준다. 다큐를 본 우리 역시 무심코 누른 버튼 하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알게 됐으니 클릭의 순간을 망설이게 될 것이다. 집안 곳곳에 쌓인 물건들을 보며 나 또한 가벼운 소비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늦지는 않았다. 내가 변하고 당신이 변하고 소비자인 우리의 인식이 달라질 때 철옹성같은 기존의 구조에도 틈이 생기고 세상도 변화할 것이다. 온라인 쇼핑몰의 앱을 닫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푸른하늘 어딘가에서 새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