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오춘기’라 부르는 갱년기는, 노화로 인해 호르몬 변화가 나타나는 시기이다. 안면 홍조, 불면증, 기분 변화, 그리고 집중력과 기억력 저하 등이 주요 증상들이다. 그 외에도 관절 통증이나 체중 변화 같은 건강 적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피해가려 해도 세월은 막을 수 없고, 야속하게도 중년의 나이와 함께 이런 증상들은 찾아온다. 40대라는 인생의 가장 격렬한 전투 시기를 지나면, 조금은 안정적으로 자리 잡힌 50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이 생긴다. 바빴던 일상이 갑자기 고요해지고, 은퇴와 건강, 노후 준비에 대한 염려가 파고든다.
세 아이들의 육아로 동분서주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면, 집안에서도 바삐 뛰어다녔고, 중국집 주방 못지않게 분주하게 음식을 해냈으며, 정신없이 차를 몰고 아이들 라이드 시간을 맞추느라 신경을 곤두세웠다 . 차 안에는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어 놓고, 도시락과 간식을 싸들고 다니며 연예인 매니저 못지 않은 열혈 엄마였다. 그렇게 살던 내가 이제는 온전히 나를 위한 스케쥴로 바빠졌다.
내 생활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꾸준한 운동과 식단 변화가 가장 크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더이상 통하지 않고,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생각에 나를 위한 투자로 시간을 내어 짐에 간다. 걷고 뛰기를 반복하고 근력운동도 챙기며 흠뻑 땀을 흘리면, 개운함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건강한 식단으로 가볍게 먹기를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생활 변화는 확실히 삶에 활력과 긍정 마인드를 불어 넣어 주었다.
갱년기가 조금 일찍 찾아온 친구들이나 주변 지인들이 우울감을 많이 얘기한다. 무기력해지고 자꾸 기분이 가라 앉는다고 호소한다. 무지개 다리를 건넌 반려견이 생각나 흐느끼는 언니도 있고, 만나면 늘 부채질을 하며 얼굴이 벌개져서 덥다는 말을 달고 사는 지인도 있다. 체력도 안되고 기분도 영 안 내킨다며 집에만 있길 고수하는 친구, 불면증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만성 피로에 고통 받는 이웃 등, 갱년기의 얼굴은 참 다양하다.
여러가지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분명한 점은 우리 모두 이 시기를 겪는다는 것이고, 늘 그렇듯 이 또한 지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주위의 갱년기 선배님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생각날 때마다 핸드폰 노트에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 배운 좋은 루틴들이나 지혜로운 방법들,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순간들이나 요소들을 적어 둔다. 하나하나 늘어날 때마다 다시 한번 리스트들을 읽고 되새긴다. 작성되어진 목록을 곱씹어보면서 흐뭇하다. 나중에 하나씩 꺼내어 요긴하게 쓸 생각에, 보물 창고 같은 문서에 정성을 다한다. 그것 마저도 무기력 해져 꺼내보지 못할지라도 무언가 방어할 수 있는 무기를 준비해 놓은 것처럼 든든하다.
리스트는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그냥 생각만해도 기분 좋아지는 것들, 약간의 성취욕을 끌어올리는 것들을 그냥 적어보는 것이다. 라벤더향 거품 목욕, 찰옥수수 먹기, 서점가서 라떼 마시며 책 읽기, 뜨개질 배우기, 등산하기, 팬트리 정리, 시간 많이 걸리는 발효빵 만들기, 하이킹하기, 예쁜 소품 쇼핑, 잔잔한 노래 들으며 마스크팩하기 등등 수백가지의 리스트들이 빼곡하다. 소소하고 즉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간이 필요한 여행까지 다양하다. 우울감이 밀려오고 마음이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나만의 맞춤 특효약들이다.
불과 몇달 전과는 다르게 홀가분해 지고 자유로워진 시간이 실감나지 않는다. 벌써 50대를 맞이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는다. 자식들은 이제 성장해서 각자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바쁘게 노력한다. 다섯 식구에서 둘로 조촐하게 남은 남편과 나 또한 앞으로의 새로운 인생 2막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계획한다. 남편은 이미 갱년기 한 가운데서 호르몬 변화를 겪고 있지만, 그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잘 이겨내고 있다.
둘만의 새로운 환경의 변화, 호르몬에 따른 정신과 육체적 변화, 분명한 건 이 모든 것을 각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스스로 컨트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의연하게 나이 들어갈 때, 그리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불안과 두려움이 무력해지고, 중년의 원숙함으로 많은 것을 녹여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