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16
케이팝 아이돌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헌터스’가 글로벌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라고 하기도 부담스러운 에니메이션이 더구나 흔한 악령퇴치 소재의 영화가 전세계를 열광시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진다.
악령 퇴치는 오래 전부터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감독들은 악령을 없애기 위해서 신성하고 불가사의한 힘을 불러와야 했고 그 힘의 근원을 전능한 신이나 강력한 서사를 지닌 신화, 전설등에서 가져왔다. 케데헌(케이 팝 데몬헌터스)역시 그 근원을 과거의 힘에서 불러왔다. 하지만 그 근원을 신도 영웅도 아닌 한국의 무속에서 불러오는 독특한 설정을 했다. 85분의 짧은 영화 한편이 동방의 작은 변방에 있는 무당들을 전세계를 지키는 힘의 근원으로 부상시킨 것이다.
먼 옛날 악령의 대마왕인 귀마는 혼을 빨아먹으며 사람들을 죽음에 빠뜨리고 있었다. 보다못한 사람들은 헌터가 되어 음악과 춤으로 사람들을 보호하게 된다. 처음 헌터들의 모습은 마치 굿을 하는 무당과 같은 모습이다. 그들은 자매처럼 이어지고 다시 시스터즈에서 현재의 걸그룹 ‘헌트릭스’에까지 이어진다. 세명의 헌터로 구성 된 헌트릭스는 겉으로는 아이돌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그들의 음악과 춤은 사람들이 가진 에너지를 연결시켜 하나의 커다란 에너지 장인 혼문을 만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만들어지는 혼문은 악령들이 뚫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의 결계인 것이다. 헌트릭스의 최종 사명은 골든 혼문이라는 더욱 더 강력한 결계를 만들어 악령을 영구히 퇴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혼을 먹지 못해 굶주림에 헐덕이던 귀마는 악령으로 구성된 ‘사자보이스’ 라는 보이 그룹을 만든다. 사자보이스는 칼처럼 강력한 군무와 음악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켰고 영혼을 빼앗긴 사람들로 인해 혼문의 결계에는 구멍이 벌어진다. 영화는 헌트릭스가 어려움을 헤치고 골든 혼문을 만들었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아마도 후속작을 위한 포석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케데헌의 성공은 스토리의 창의성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음악과 춤이라는 강력한 소재를 케이 팝이라는 대세 트랜드에 보기좋게 안착시킨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별 제작된 노래와 춤은 보는 이를 마치 케이 팝 콘서트 장에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악령퇴치라는 으스스한 이야기에 케이 팝의 절도 있는 춤과 경쾌하고 감성적인 음악이 가미되면서 새로운 흥미를 자극한 것이다. 주인공 루미가 부른 ‘Golden’ 이나 사자보이스의 칼군무가 깃든 ‘Soda Pop’은 음악 전문 채널 Spotify 나 Apple Music 등에서 연속 1위를 차지했고 지금도 열광하는 팬들은 패러디와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가 가미된 숏츠를 올리고 있다. 특히 한국인인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영어 노래에 우리 말 가사가 수시로 들리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곡도, 신칼, 사인검등 전통적 무기를 악령 퇴지용으로 사용하고 김밥과 라면, 오뎅등을 즐겨 먹는 K-POP 아이돌의 모습도 보여준다. 남산타워가 배경으로 등장하고 한국인이면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거리의 모습과 추억이 깃든 골목길들이 스크린에 넘쳐난다. 또한 후배나 막내 같은 단어들이 영어로 번역되지 않고 그대로 한국말로 발음된다. 제작은 소니가 했지만 제작에 참여한 많은 현지 한국인들의 노력의 결과가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음악과 춤은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원시 시대부터 공동체의 갈등을 해소하고 개인의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등 사람들의 감정을 컨트롤하는데 음악과 춤을 활용했다. 실제로 일정한 율동과 음악에 맞춰 다같이 움직이면 안정감을 주고 고통을 경감시키는 효과를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런 집단 치료의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BTS 의 Army 팬층일 것이다. 같은 노래와 율동을 함께 하며 전세계의 서로 다른 Army 들이 하나로 뭉치는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모습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확인했었다. 아이돌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는 공연티켓을 구하기 힘든 두명의 임씨가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트로트의 임영웅과 피아니스트 임윤찬. 오죽하면 공연티켓을 구해주는 자식들을 효자반열에 올리는 해프닝이 일어날까 싶다. 음악과 춤의 효과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는 반증인 것이다.
에니메이션이라는 가벼운 장르에 인간의 근원을 트랜디하게 녹여 낸 것이 이 영화를 성공시킨 비결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징어게임에 이어 또한번 돌풍을 일으킨 우리네 문화가 너무도 자랑스러운 요즈음이다.